매월 160여 개 매장의 임대료와 관리비, 각종 공과금을 납부한다.
2024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ERP 시스템에 전기일, 증빙일, 지급일을 입력한다.
이제 이 행동은 의식에 따른 움직임이 아니다.
날짜는 내게 숫자이자 문자일 뿐,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oo점 1월 관리비
oo점 2월 관리비
oo점 3월 관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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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문구를 매일 입력해 왔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속 인물은 옛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나'다.
노래 <사계>의 가사,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가 곧 내 얘기다.
기술이 개발되어 시대가 변한다지만, 도구만 달라졌을 뿐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지금의 월과 일을 입력하다 보면 멍해진다.
오늘이 6월인지 8월인지,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조차 헷갈린다.
나는 지금 눈으로 숫자를 보고 뇌로 읽는 것이 아니다.
습관이 된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은 자주 생각이 움직이지 않고, 기억이 멈춰 버린 것 같다.
이러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문득 묘한 공포가 든다.
“실제로 무의식으로 일 하는 거 같아.”
이 노동의 대가는 하루 8만 원을 조금 넘는다.
너무도 쉬운 일이다.
나는 이런 일밖에 할 줄 모른다.
어릴 때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생각하는 힘이 약해져, 어렵고 복잡한 일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나 보다. 할 수 있는 일만 반복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뇌가 있으면서도 생각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견디고 또 견뎌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이 또한 정말 견뎌야 하는 일인지
나는 묻고 싶다.
예수나 부처 같은 이들에게 말이다.
“당신들도 이렇게 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