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김전승 이사장과 단우들, 서울 도산공원 찾아 참배
올해 1월 첫날부터 3년 임기가 시작된 김전승 흥사단 신임 이사장과 흥사단 단우들이 2026년 병오년 새해를 맞아 1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도산공원을 찾아 도산 안창호 선생 묘소에 참배했다.
김 신임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열린 흥사단 공의회 정기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공식 취임식은 1월 10일 오후 흥사단 신년하례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흥사단은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 도산 묘소를 찾아 흥사단 창립자이자 애국독립운동의 표상인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참배를 해 오고 있다.
평생 나라를 사랑했던 애국자 도산 안창호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97년 나이 19세때 도산 선생은 서재필이 주도하던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필대은과 함께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평양 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 탁월한 웅변으로 명성을 날린 것으로 유명하다.
청년으로 성장한 도산은 1905년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했고 1907년 29세 때 국내에서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1909년에는 흥사단의 전신격인 청년학우회를 조직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망명길에 오른 도산은 1912년 미국에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1913년에는 8도 대표를 모아 흥사단을 창립했다. 1928년에는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내무총장을 맡았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폭탄 사건과 관련해 일경 체포돼 국내로 끌려왔다. 1935년 옥살에서 풀려났으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감옥에 갇혔고,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도산 선생은 평생을 위기에 처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삶을 살았다. 60 평생 나라를 지키고 되찾기 위한 온전한 애국의 삶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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