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없는 독립투사 제주는 우리”…눈물로 올린 설차례

20개 시민사회단체 회원 “선열들 못 이룬 꿈 계승, 실천하자” 다짐

by 이영일
KakaoTalk_20260220_121800676_02.jpg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개인 참가자 등 33인은 후손이 남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대신해 설 차례를 올리는 추모·계승 행사를 열었다. 대한민국순국선열숭모회

차가운 겨울 공기가 남아 있던 지난 2월 18일 정오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조용하던 묘역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모였다. 가족의 제사를 지내듯 정성스럽게 준비된 제물 앞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후손 없는 독립투사의 제주(祭主)”라 자처했다.


이날 현충원을 찾은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개인 참가자 등 33인은 후손이 남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대신해 설 차례를 올리는 추모·계승 행사를 열었다. 평생 항일무장투쟁에 헌신했던 홍범도 장군과 이름 없이 잠든 무후 광복군 17위 선열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우리가 제주입니다"


홍범도 장군 묘역에 참배한 이들은 묵념을 시작으로 고개를 숙였고 일부는 차례상을 바라보다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 조용히 오갔다. 가족이 없어 명절에도 찾는 이 없을 선열들을 생각하자 현장은 어느새 한 집안의 제삿날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어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서 열린 무후 광복군 17위 참배는 더욱 숙연했다.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못한 이들의 묘 앞에서 참가자들은 국화와 술잔을 올리며 긴 시간을 머물렀다.

224689_226750_2016.jpg ▲지난 18일 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소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배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남하 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


행사의 절정은 한대수 아시아1인극협회 대표의 ‘독립군 진혼굿’ 특별헌정 공연이었다. 대형 태극기를 힘껏 휘두르며 시작된 퍼포먼스는 묘역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이어 붉은 장미꽃잎을 하나씩 뜯어 땅에 흩뿌리고 가슴을 치며 이어간 진혼의 몸짓은 마치 전장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는 의식처럼 펼쳐졌다.


“선열들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공연이 끝나자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한 참배객은 “역사책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의 어른들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선열들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224689_226764_5337.jpg ▲대전현충원 무후광복군묘지에서 한대수 아시아1인극협회 대표가 독립군 진혼(鎭魂)굿 특별헌정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개헌개혁행동마당


공연을 맡은 한대수 대표는 오랜 세월 역사 현장을 찾아 진혼 퍼포먼스를 이어온 예술가다. 그는 “잘하지도 못하지만 마음이 시켜 맨몸으로 바치는 공연”이라며 “잊힌 죽음들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번 행사는 개헌개혁행동마당을 중심으로 공익감시 민권회의, 국민주권개헌행동, 글로벌 에코넷,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20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마련했다. 추모를 마친 뒤 열린 간담회에서는 내란 없는 국가, 주민자치와 지방분권, 남북 상생과 평화 등 오늘의 시대 과제들이 논의됐다. 선열의 희생이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에서다.


행사를 진행한 송운학 개헌개혁행동마당 상임의장은 “홍범도 장군과 무후 광복군 선열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고도 후손을 남기지 못한 삶을 살았다”며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화이부동’ 정신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름을 올린 33인의 참가자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받아 널리 알리고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명절이면 가족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지만 이날 현충원에서는 다른 의미의 가족이 만들어졌다. 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기억으로 이어진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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