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8주기 추모식 엄수

흥사단 단우들, 공식 추모식 전 도산 묘소 참배해 헌화하며 추모 거행

by 이영일
KakaoTalk_20260310_192752084.jpg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서거 제88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흥사단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부흥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서거 제88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을 비롯해 조성명 강남구청장, 서명옥 국회의원, 정경조 평안남도지사, 김현기·김형재·이새날 서울시의원, 이호귀 강남구의회 의장과 구의원,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김전승 흥사단 이사장, 구자관 도산아카데미 이사장, 김철균 도산아카데미 원장, 도산안창호함 전투체계관 정의승 대위 및 부대원, 이명우 前 평안남도지사, 박유철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장, 정수용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장, 이성섭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신권호 평안남도 강서군민회 회장, 송일영 대한광복선열부인회 회장 및 회원들 등 각계 인사와 시민 등 약 200여 명이 참석해 도산의 정신을 기렸다.

225944_228085_3737.jpg ▲흥사단 단우들이 공식 추모식이 시작되기 전 도산 묘소를 참배하고 헌화했다. 흥사단


특히 흥사단 단우들은 공식 추모식이 시작되기 40분 전 미리 모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헌화하며 추모의 뜻을 먼저 전했다.


추모식은 국민의례로 시작됐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유애리 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를 함께 부르며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을 기렸다.


이어 약전 봉독은 이명우 전 평안남도지사가 맡았으며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의 추모식사에 이어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 조성명 강남구청장, 서명옥 국회의원, 김전승 흥사단 이사장이 차례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행사에는 음악 공연도 마련됐다. 도산안창호윈드오케스트라가 애국가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만들었고, 바리톤 김영재가 도산이 작사한 곡을 독창으로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도산을 기리는 추모가를 함께 제창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225944_228086_354.jpg ▲김재실 회장이 10일 서울 강남구 도산 안창호 기념관에서 열린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제88주기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도산의 삶은 오로지 나라 사랑”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태어난 안창호 선생은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청년 시절부터 민족의 미래를 고민한 사상가이자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였다.


1897년 18세의 나이에 평양 쾌재정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연설에서 당시 단상에 앉아 있던 고관들을 향해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독립협회 에 가입한 그는 190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현지 한인 동포들의 열악한 현실을 목격한 뒤 학업 대신 독립운동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1905년 미국에서 공립협회 를 조직했고, 귀국 후에는 신민회 를 창립하며 민족계몽운동을 이끌었다. 또한 평양에 대성학교와 태극서관을 세우는 등 교육과 출판을 통해 민족의식 고취에도 힘썼다.

225944_228087_3936.jpg ▲제88주기 추모식장의 도산 안창호 선생 영정. 연합뉴스


1909년 안중근 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이후 일제에 체포되기도 했으며, 1910년 한일병합 이후 다시 미국으로 망명해 1912년 대한인국민회 를 조직하고 1913년 흥사단을 창립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계속됐다. 1931년 윤봉길 의 홍커우공원 의거 와 관련해 체포됐고, 이후 수양동우회 사건 으로 다시 투옥됐다.


잦은 옥고와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38년 3월 10일 생을 마감했다.


도산이 남긴 ‘무실·역행·충의·용감’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의 시민정신과 독립운동 정신의 중요한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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