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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의 황당한 ‘게임시간 선택제’

셧다운제 폐지 찬성자도 반대자도 모두 비판하는 희한한 제도

by 이영일

지난 2011년 11월, 청소년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을 목적으로 도입된 일명 ‘게임 셧다운제’가 청소년보호법 개정에 따라 올 1월 1일부터 폐지됐습니다. 게임을 중독의 대상으로 본다는 게임업계의 지속적 반발과 모바일 게임은 대상에서 빠져 실효성이 없고 청소년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이유가 폐지의 중요 사유죠.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전국중고등학생대표자학생회협의회 등 청소년으로 구성된 단체들은 셧다운제 폐지 환영 입장을 표했지만, 14개 중독 관련 전문학술단체 및 9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2021년 7월에 셧다운제 폐지에 반대한 바 있고 학부모들도 게임에 빠지는 것을 어떻게든 조절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관련 기사 : 2021년 7월 22일자, "셧다운제 때문에 게임산업 성장 못한다? 황당한 주장" http://omn.kr/1ujq6)


‘게임시간 선택제’, 현실을 모르는 희한한 제도라는 비판 고조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는 이같은 우려에 대한 보완 조치로 ‘게임시간 선택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 제도는 18세 미만 청소년 본인이 희망하거나 부모 또는 법정대리인이 희망할 경우 원하는 시간대에만 게임을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즉, 제도를 택한 사람에 한해 접속 시간이 규제되는 것이죠.


여가부가 ‘게임시간 선택제’를 추진하고 있는 근거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2021년 9월에 발표한 『2021 게임이용자 실태조사』결과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조사에서 ‘게임시간 선택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65.8% (필요하다: 43.9% + 매우 필요하다: 21.9%)로 나타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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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희한한 제도’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학부모 박 모씨는 “이 제도를 만든 여가부는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는건지 말 잘 듣는 자식만 키운건지 자괴감이 든다”며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청소년교육을 연구한다는 김 모씨도 “정말 이런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시작되는지 궁금하다”며 여가부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모 청소년기관의 신 모씨도 "어느 18세 미만 청소년이 스스로 게임 접속시간을 제한하겠나. 그렇지 않아도 부모와 자녀간 관계가 좋지 않은 가정이 많은데 부모의 일방적 희망으로 게임 접속시간이 정해질 우려가 높고 이는 또다른 관계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라면 "이러려면 왜 셧다운제를 폐지했는지 모르겠다"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셧다운제 폐지를 반대했던 한국청소년정책연대의 서승호 사무총장(장안대학교 교수)도 “이미 심야 게임시간 제한이 없어졌는데 어떤 청소년이 부모와 상의해서 내가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놓고 나머지 심야 게임 시간을 규제하겠냐”며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황당한 제도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 사무총장은 “셧다운제 폐지는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 침해를 없앤다고 하는 취지라면서도 게임시간 선택제를 통해 부모의 동의라는 추상적 과정을 통해 선택적으로 자율권을 포기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효과가 없어 보인다”며 제도 시행에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이같은 비판의 배경에는 셧다운제가 입법된 2011년 당시 80%가 넘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찬성을 등에 업고 정부 입법으로 제정한 여가부가 이제와서 셧다운제가 청소년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인 것처럼 앞장서 폐지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실효성도 없는 ‘게임시간 선택제’를 끼워 놓았다는 분석도 존재합니다. 더욱이 이 ‘게임시간 선택제’가 모바일 게임이 제외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실효성도 없다는 주장도 높죠.


청소년 모바일 이용률 82% 넘는데 ‘게임시간 선택제’에서 제외?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2월 발표한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2020년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64.2%이고 10대 청소년의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82.4%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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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21년 전체 게임 이용률은 71.3%이고 이중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90.9%로 PC 게임(57.6%)이나 콘솔 게임(21%)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즉, 어떤 배경이나 필요성 여부등을 모두 떠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게임시간 선택제’는 그 실효성면에서 제도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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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다르지만 촛불중고생시민연대 등 청소년단체들도 '셧다운제를 없애놓고 또다른 규제를 제시한다'며 이를 철폐하라는 입장입니다. 셧다운제 폐지를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게임시간 선택제’를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여파로 청소년의 미디어 사용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청소년 보호정책은 그 실효성을 담보해야 합니다.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셧다운제를 폐지해 놓고 그 대안으로 정부가 또다른 규제를 시행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셧다운제를 폐지했는지 알 수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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