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 민원에 "태극기 게양 의무없다"는 우리은행

8월은 광복절이 있는 달인데, 관공서 아니지만 이런 태도 맞나..

by 이영일

며칠전 버스를 타고 청량리 부근을 지나가다가 우리은행 옥상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태극기 너무 더러워 보이는 거였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그 태극기를 당겨서 보니 나긋나긋 다 헤져서 무슨 걸레도 아니고 때는 꼬질꼬질 하얀 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관리가 저 지경일까'하며 은근 화가 났습니다. 태극기를 걸어 두었으면 아무리 뭐해도 관리에는 좀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던 중이라 그 건물이 우리은행이 관리하는 건물인지 건물주가 따로 있는데 우리은행이 입주해서 관리를 다른 사람이 하는지는 자세히 못 보고 지나쳤습니다.


그날 밤 내내 그 태극기가 떠 올라 마음이 계속 개운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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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지난 4일, 우리은행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정중한 의견을 올렸습니다. '태극기가 너무 더러우니 혹시 우리은행측이 관리하는 건물이라면 신경을 좀 써 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어제 오후에 우리은행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주신 의견을 통해 해당 지점에 연락을 해보니 제가 지적한 내용이 맞았고 관리도 우리은행측이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중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저의 의견이 맞는 말이고 관리에 더 신경을 쓰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태극기를 새 것으로 교체한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직원분의 이야기는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해당 지점에 태극기 게양에 대해 향후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더니 '은행은 관공서가 아니여서 태극기 게양의 의무가 없으니 향후 아예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은행이 무슨 관공서도 아니고 태극기를 의무적으로 게양할 이유는 없다고 저도 그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가 무슨 홍보 현수막도 아니고 이왕 태극기를 게양해 왔으면 관리에 신경을 쓸 줄 알았는데 '태극기가 너무 더럽다'는 민원을 받고 아예 게양하지 않겠다고 하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태극기를 계속 걸어둬라' 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걸 강제할 명분도 없어 "이왕이면 새 것으로 교체해 게양하면 더 좋을텐데 아쉽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지만 기분이 묘했습니다.


거리 곳곳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볼때마다 늘 자랑스럽고 좋았는데 괜히 민원을 넣었다가 태극기 하나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8월은 광복절이 있는 달인데, 아무리 태극기 게양 의무가 없다손 치더라도 '귀찮은 것 이참에 잘됐다'라는 반응이 너무 슬펐습니다.


1899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족 정통은행이라며 구한말 시작된 우리은행이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과 한국전쟁, IMF 환란과 글로벌 금융위기등 시대의 고비마다 고객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홍보하면서, 관공서가 아니니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를 없애겠다는 우리은행의 응대 방식에 국가유공자의 가족으로서 마치 뒤통수를 맞은듯한 울적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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