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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일 Mar 31. 2020

“의료보험의 씨를 뿌린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

때아닌 의료보험 당사자 논란,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의료보험 참뜻 훼손

▲ 화제가 된 코로나19 진료비 명세서

3월 중순 SNS에서 '코로나19 치료비 명세서'라는 사진 한장이 화제가 됐었죠. 진료비 총액이 970만9,900원인데 환자부담 총액은 144만8,700원이고 국가지정 전염병이기 때문에 100% 환급되서 본인 부담금이 0원이라는 사진이었습니다.      


이는 인제대학교 해운대 백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로 발급된 명세서가 맞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진이 SNS에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의료보험 시스템이 대단하다는 국내외 칭찬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1977년 우리나라에 도입된 의료보험 제도를 만든 당사자’라고 밝혔습니다.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으로서 보험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한 사람’이라며 국제적으로 칭찬받고 있는 지금의 코로나 사태 대응을 마치 자신의 공인양 치켜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헐~     


이를 두고 의료보험 제도는 누구 덕인지를 두고 때아닌 논쟁이 일고 있답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이라고 강조했고 조선일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틀을 마련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 국민에게 확대시켰으며, 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 시기에 현재의 시스템을 갖췄다고 보도했습니다.   

   

난데없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의료보험 창시자(?) 발언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그 자신이 그 업무에 관여했을지는 몰라도 국내 의료보험 제도를 마치 박정희 시대부터 시작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의학적 관점에서나 역사적 관점에서나 맞지 않습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 근대 의료보험 제도의 씨앗은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영춘 박사가 전북 옥구군에서 처음 시행한 민간 의료보험제도     


우리나라 근대 의료보험 제도의 씨앗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일제하 전라북도 군산에서 의료봉사의 한길을 걸었던 국내 최초 의학박사 1호인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국내 최초 의학박사 1호,  故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

한국의 슈바이쳐라 불리던 한국 농촌의료봉사의 선각자인 쌍천은 1935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군산의 일본인 구마모토의 농장 부설 의료원인 자혜진료소장으로 부임해 군산, 김제, 정읍지역 가난한 농민들을 대상으로 의술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쌍천은 공중위생의 선구자입니다. 전라북도 사람, 특히 군산 사람들이 이영춘 박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도 있죠.     


지질이도 가난했던 그 시절, 쌍천은 학교 위생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적극적 치료를 위해 193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양호실과 양호교사제도를 개정보통학교에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48년부터는 결핵, 매독, 기생충을 3대 민족의 독으로 규정하고 그 퇴치를 위해 한국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합니다. 70년대 초에는 자신의 자혜의원을 개정중앙병원으로 확장해 옥구군 관내 2천여명을 대상으로 당시 50원씩 조합비를 내고 무료진료를 받는 우리나라 최초 민간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합니다. 그 의료조합사업이 현대의 의료보험 사업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 진료하는 쌍천 이영춘 박사 해방후 쌍천은 구마모토 농장의 건물을 이용해 종합병원인 개정중앙병원을 연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의료보험의 참뜻    


위 내용들은 의료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포털사이트를 한번 검색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때 당시 민간의료보험 제도가 지금의 발달된 의료보험 체계와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아픈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 혜택을 주려 한 시스템적 기반은 동일하답니다.     


쌍천(雙泉)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의 삶, 영혼과 육체를 살리는 우물이 되고 싶어 하는 이영춘 박사의 마음을 담은 호(號)입니다. 쌍천이 활동했던 군산 개정(開井)은 ‘우물이 열리다’라는 뜻을 가진 마을이기도 하죠.  

  

극도의 가난이 민중의 삶을 뒤덮었던 근·현대시기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목마름을 덜 수 있는 우물과 같은 삶을 고대했던 예방의학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    

▲  쌍천 이영춘 박사는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살았다. 말년에는 붓글씨 쓰는 것을 즐겨 이 사진은 그의 자손들이 귀하게 간직해 오는 사진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했던 썽천 이영춘 박사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적 혜택을 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도했던 의료보험의 참뜻이 반백년후 정치판의 정쟁속에서 훼손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아무리 자화자찬이 능한 정치인들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맛에 맞게 엄연한 사실을 슬쩍 비틀어 마치 자신들이 없던 제도를 개발한 것처럼 호도하는 현실을 보며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듯한 정치판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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