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판속에서 ‘보물 문화재’로서 최소한의 예우 없어
동묘역 3번 출구를 끼고 들어서면 동묘시장을 바로 만난다. 구제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시장’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각종 중고품과 옷들이 산더미를 이룬 거대한 만물상이고 또 벼룩시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소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발품을 파는만큼 싸고 기가 막힌 옷들을 찾을 수 있는데서 소문이 퍼졌다.
그런데 이곳에는 진짜 보물이 존재한다. 보물 제142호(1963년 1월21일 지정)로 지정된 동묘가 바로 그곳이다.
동묘의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로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중국 촉한의 장수 관왕, 즉 관우를 모신 사당이라는 뜻)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조각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임진왜란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1601년 (선조 34년) 준공됐다.
명나라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라 하여 크게 숭배하였다고 한다.
원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4개나 있었다고 한다. 선조 31년(1598)에 남관왕묘가, 선조 34년(1601)에 동관왕묘가, 고종 20년(1883)에 북묘가, 광무 6년(1902)에 서묘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동묘만이 남은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이 동묘가 이 4개의 묘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제대로 격식을 갖춘 곳이라 하니 가히 보물의 반열로 인정할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식 보물인 동묘는 동묘시장에서 파는 몇만원짜리 옷가지보다 더 못한 상황에 놓여있는 듯 하다.
기자가 방문한 28일 토요일 오후, 동묘공원에는 방문한 이들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파로 한껏 움추러 든 안좋은 날씨에도 공원 주변은 중고 물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벼룩시장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정문 양쪽 담장 밑에도 옷들을 파는 노상 가판이 펼쳐져 있어 동묘를 둘러싼 담장이 시장 담벼락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문화재인 동묘가 담장 하나를 경계로 보물과 시장으로 구분되는 셈이다.
'동묘공원'이 새겨진 표지석 앞에는 대충 설치된 ‘안전제일’ 공사장 바리게이트가 쓰러지고 비뚤어지게 대충 세워져있고 누가 걸쳐놓은 옷가지도 걸려 보물 유적지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동묘를 구경하러 들어와 봤다는 초등학생 부모는 “이곳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것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몰랐다. 정말 이런 곳이 보물이 맞냐?”며 황당해 할 정도였다.
동묘공원 안은 담벼락 밖과는 달리 을씨년스럽기까지했다. 관우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주체도 모호하고 존재하지도 않아 말이 보물이지 주인없는 사당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이 황량한 모양새다.
동묘시장은 이제 하나의 명소가 된지 오래다. 서민들이 즐겨찾고 또 새로운 패션을 추구하는 젊은이들부터 값싼 물건을 사려는 노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가보고자 하는 곳이다.
그 중심에 위치한 역사의 숨소리가 담긴 진짜 보물 ‘동묘공원’의 주위가 이렇게 시장판속에 내던져진 것처럼 홀대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시장과 보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공원 입구 주위를 정비하고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는 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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