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1시 명동성당에서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결성식
1980년대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다 구속된 양심수들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반민주, 반평화, 반인권 세력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바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아래 민가협)다.
1985년 12월 12일 창립된 민가협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아래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구속자가족협의회'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 민가협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인권지킴이로 시위 현장의 맨 앞에 섰고 전투경찰에 끌려가는 학생을 맨몸으로 구출하기도 했다.
민가협은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엄혹한 시기에 어머니들이 보랏빛 스카프를 매고 '내 새끼를 살려보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민가협 운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민주주의 운동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양심수라고 부르는 이 존재의 각인은 민가협 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민가협이 올해 40년을 맞았다. 민주와 인권을 향한 어머니의 위대한 여정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민가협 운동에 참여하고 또 지지해 온 사람들이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결성했다.
24일 오전 11시,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결성식에는 100여 명이 넘는 관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주인공은 단연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
참가자들은 먼저 민중의례와 묵념으로 결성식을 시작했다. 잠시동안 긴 침묵이 흘렀다.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함세웅 신부는 축사를 통해 "자녀들이 감옥에 갔을 때 그 당시 어머니들 가슴 졸이면서 아파하셨다. 그리고 자식들을 원망하셨다. 좋은 대학에 갔는데,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되었는데 이 청년 학생들이 박정희 전두환 독재와 싸우느라고 투옥이 됐다. 그런데 감옥에 간 자녀들이 어머니 아버지들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함 신부는 "나 자신도 많은 청년 학생들을 보면서 많이 변화됐다. 우리 사제들을 재단에서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내고 초대한 분들이 바로 그 당시 청년 학생들이었다"라며 "참가자들의 건강과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말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도 축사를 통해 "민가협은 단순한 양심수 가족의 가족을 돕는 모임이 아니었다.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구속된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켜내고 국가 폭력과 권위주의에 맞서서 진실과 정의를 외친 뜨거운 운동의 산증인"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민가협의 투쟁은 오늘날 인권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세운 힘이 되었고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라며 "민변도 억울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했던 민가협의 정신을 이어받아 인권과 민주주의의 길에 함께하겠다"라고 전했다.
95년생 최연소 국회의원 "우리 청년들이 민가협 기억하겠다"
결성식에는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이철 대일양심수동우회 회장, 손솔 진보당 국회의원도 참석해 축하의 인사를 전했는데 특히 손솔 의원이 어머니들의 환영을 많이 받았다.
국회의원이 된 지 2주가 됐다는 손 의원은 오랜 기간 현장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온 청년운동가 출신이다. 1995년생으로 제22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 된 손 의원은 "우리 청년들이 민가협을 기억하고 민주화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제가 역할을 다해 나가겠다. 일단 국회에서 내란 청산부터 제대로 하겠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기념사업위원회는 결성식 한 시간 전인 오전 10시, 대표자회의를 먼저 열고 상임운영위원회 및 사업단,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기념사업위원회는 앞으로 아카이브 구축 사업과 백서 발간, 민가협 40년과 함께한 어머니들과 양심수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해 구술영상을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조원호 기념사업위원회 상임 공동운영위원 운영위원장은 "기념사업위원회는 향후 민가협 40주년 기념 헌정공연과 기념식, 학술토론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더 많은 단체,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