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이라는 것
퇴보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굉장한 노력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따라 적다가 공감이 가서 이 매거진의 첫 글을 적는다.
35세. 배우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빨라지기 시작하는 나이. 그땐 잘 느껴지지 않지만 마흔이 넘으면 그것이 체감된다. 마구 흔들리는 나이 마흔. 작은 떨림이 마음을 흔든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라 그런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해야 했다.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으면 더 하면 된다. 배우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느리다면 더 많이 배우면 되지라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살았다. 살다 보니 잊는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다. 배우는 속도가 느려진다.
젊을 때 공부 방식과 나이 들어 공부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우선 외우는 것부터 잘 되질 않는다. 가볍게 반복하며 자주 본다. 외우듯 스치듯 많은 것을 보다 보면 하나 둘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대신 연결은 어릴 때보다 잘되는 편이다. 저자의 의견을 인정하려는 자세는 나이가 들어 여유가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일선에서 물러 나는 건 아니다. 기술은 사정을 봐주질 않는다.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잘하진 못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살핀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더 바쁜 것 같다. 가끔은 학교 다닐 때 이렇게 했으면 좋은 대학 갔을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괜히 더 치열하다.
가만히 서 있으면 퇴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고 있으니까. 적어도 세상의 보폭에 맞춰 걸어야 한다. 무릎이 시큰거려도 계속 걷다 보면 근육이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그 노력은 필사적이라고 할 만하다. 꾸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세상은 바뀌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이 느껴져 가끔씩 작아지는 자아를 발견한다. 그래서 오늘도 노력한다. 아직은 뒤쳐지고 싶지 않다. 그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