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핌플은 그렇게 불린다
지금은 드라이브가 대세가 되어 민 러버라고 불리는 핌플인(pimple-in) 러버는 원래부터 쓰던 러버는 아니었다. 지금에야 독특한 러버로 불리는 핌플아웃(pimple-out) 러버 그중에서도 스펀지가 없는 OX(오소독스)의 역사가 훨씬 길다. 러버의 시조새라고 불리는 이 러버를 탁구장에서는 '뽕'이라고 불린다.
핌플은 말 그대로 '돌기'를 뜻한다. 러버 고무 표층을 지지하는 고무 기둥으로 이것이 휘어지고 복원되면서 회전을 만들게 된다. 이게 왜 '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축구 신발에 박힌 징도 '뽕'이라고 불리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뽕'으로 불리는 롱핌플(long-pimple) 러버는 조금 다른 특성이 있다. 보통의 러버가 거울 효과 덕분에 하회전으로 보내면 하회전으로 돌아오고 상회전으로 보내면 상회전으로 돌아오는 것과는 반대로 회전을 잘 주지 못하는 이 러버는 내가 준 회전이 그대로 돌아온다. 하회전으로 보내면 상회전으로 돌아오고 상으로 보내면 하회전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보통 수비 선수들이 많이 쓰며 '커트'라는 기술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들을 커트 주전형이라고 한다.
커트 주전형의 대표적인 선수는 주세혁 선수다. 여자 선수 중에는 서효원 선수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현역이다) 이들이 쓰는 '커트'라는 기술은 마치 공을 자르는 듯한 모양이라 꽤나 멋지다. 그럼에도 선수들 중에 커트 주전형이 많지 않은 것은 많은 체력 소모와 함께 상대의 실수를 기다려야 한다는 수동적인 플레이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커트 주전형 선수들도 공격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생체에는 이런 선수가 드물다. 선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위 이 '뽕 러버'를 사랑한다. 왜냐면 이 러버 자체 만으로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탁구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멘붕을 안겨 줄 수도 있어 몇몇 대회에서는 '4부 이하 출전 금지'라는 페널티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약한 중년 여성이나 실버 쪽에서는 이 러버가 필수에 가깝게 쓰이고 있다.
롱핌플의 최대 강점은 익숙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치듯 치면 혼자서 실수하다 끝난다. 롱핌플을 많이 겪지 못한 사람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 실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체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커트 주전형처럼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전진 블록형이라고 불리는 전형으로 서비스할 때 라켓을 회전시키는 트위들링으로 상대를 흔든다. 롱핌플은 철저히 찬스를 만드는 것에만 사용한다. 단순한 시스템에 효과적인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많이들 쓴다. 단지, 롱핌플에 익숙한 사람들과 만나면 할 게 없을 뿐이다.
이 전형의 최고는 스웨덴의 아케스톰 파비안(Fabian Åkerström)이다.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감각으로 롱핌플을 쓰는 이 선수는 세계에 유일무이하다고 할만한 선수다. 경기 중에 트위들링을 하는 선수는 그렇게 흔치 않고 있다고 해도 보통 수비 전형들이기 때문이다.
이 전형이 어려운 점이 평면 러버의 기술을 모두 쓸 줄 알아야 하고 롱핌플의 기술 또한 모두 쓸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트위들링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경기 중에 즉흥적으로 트위들링을 하는 것은 선수 수준의 랠리에서는 쉽지 않다. 모든 시스템은 철저하게 만들어져 있고 본능적으로 플레이해야 한다. 아마 경우의 수 또한 일반 선수들보다 곱절은 많을 것이다. 학구적인 외모답게 머리도 똑똑한 선수인 것 같다.
아무리 희귀하고 어려운 전형이라고 해도 유리하진 않다. 선수 레벨에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도까지 연마하는 생체인은 없다. (그러고 보니 선수도 없다) 성적을 내려고 하는 사람은 희귀하고 독특한 것보다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로 레슨 받은 지 세 달이 되었다. 레슨이 9주 차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9주 차 레슨이지만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해서 그런지 다른 분들보다는 빠른 편이다. 탁구장에서 고수들과 공을 섞을 기회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기존에도 종종 불러 같이 쳐주시기도 했지만 동호회 가입 이후 조금 더 잘 대해 준다는 느낌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생각보다 경계가 있는 듯하다.
오늘의 고수는 로터리 전형 펜홀더다. 일본식 펜홀더지만 양쪽에 러버를 붙인다. 물론 뒷면은 롱핌플이다. 치면서 라켓을 돌리다 보니 로터리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색 러버로 치는지로 봐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고수는 드라이브 연습을 시켜 줄 땐 롱핌플로 한다. 자신은 롱핌플 블록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2부인데도 탁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나 보다.
드라이브를 걸면 어김없이 하회전으로 돌아온다. 내가 강하게 걸수록 더 강한 하회전으로 돌아온다. 드라이브 걸고 보스커트로 놓아주고 걸고 해야 하지만 우격다짐으로 계속해서 걸어본다. 2개를 넘기기가 어렵다. 회전은 계속 쌓여 간다. 초보인 나는 아직 내 회전을 조절할 수 없다.
고수는 연습 게임을 하자고 한다. 게임 한판으로 너와의 연습은 끝이야라는 무언의 신호다. 고수가 내어준 시간은 감사하다. 모두가 자기 탁구를 치러 오는 것이기에 하수에게 내어주는 시간은 그렇게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점 핸디를 받고 3:1 패배를 했다.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기분이라 한 세트를 이긴 건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좋은 연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뒤에서 무심히 쳐다보던 관장님이 부른다.
"레슨 해야지"
아니, 방금 게임했다고요. 힘든데 더 힘든 레슨을 해야 한다. 관장은 말을 잇는다.
"오늘은 이걸(롱핌플)로 해보자"
"첫 볼은 쇼트하고, 두 번째는 돌아서서 드라이브 그리고 계속 드라이브하다가 못할 거 같으면 보스커트로 놓아주고... 그럼 무슨 공이 되지?"
"무회전입니다"
"그래.. 공 잘 보고 치도록 하고"
체력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체력을 다 뺀 뒤의 레슨은 힘들다. 팔이 후들거린다. 그래도 마무리했다. 드라이브가 많이 좋아진 듯했지만 여전히 무게 중심 이동이 어설픈 것 같다.
더 연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