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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r 05. 2024

의대 증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3

뚝심이 아니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병원에 있다 보니 이번 사태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나오는 뉴스뿐만 아니라 예전에 올라왔던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함께 보게 된다. 의료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할 수 없다. 공공재이면서 많은 학생들의 워너비다. 의사가 되기 위해 밤낮을 설치며 초중고를 보내는 것은 공식처럼 당연하다. 그래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서울대 물리학과가 탑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순간 의사가 우리 사회의 성공의 지표가 되었다.


  의사에 대한 자격지심일까?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에 대한 반감일까? 아니면 그냥 가진 자에 대한 분노 표출일까? 혐오스러운 댓글을 만날 때마다 의문이 든다. 저 사람들은 아프지 않거나 주위에 아픈 사람이 없거나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했거나 사이코패스이거나. 수많은 목숨들이 담보처럼 잡혀 있는 이런 사태에 의사들 다 잘라버리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승부욕이 시야를 좁게 만든 탓일까?


  필수 의료를 충족하기 위한 의사 충원이라는 게 이번 의사 증원의 목적이라고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그리고 너무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너무 단순한 방법이다. 기시감이 드는 것은 민노총을 대할 때도 간호사, 교사를 대할 때도 그랬다. 의사 다음은 어딜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지지율이 떨어지면 안 되는 건가?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어느 한 집단이 쓰러져 나간다. 


  전공의 1년 차의 업무 강도와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전공의 1년 차의 1주일 평균 노동 시간은 80시간이 넘는다. 60시간에도 분노하던 우리 직장인 아니었던가. 게다가 그들은 매 순간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선택을 해야 한다. 때로는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교육을 받아야 하는 그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겨진다. 그것도 과로에 찌든 1년 차 전공의들에게 말이다. 3월에 병원 가지 말라는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필수 의료가 응급 의학이 바로 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되지 않느냐라는 단순한 논리를 펼 수 있다.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기피과에 지원하거나 지방 병원에 남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전공의들은 편해질까? 그것 또한 아닌 듯하다. 미국은 호스피탈리스트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당직을 서는 전문의다. 이들은 전공의의 교육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좋은 제도다. 한국에서도 하면 되겠지만 그들의 몸값을 병원들은 감당할 수 없다. 전공의라는 저가 노동력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럼 결국 동네 병원이 늘어날 거다. 병원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병원을 찾는 횟수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의료보험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보험으로 먹고사는 진료과목은 유지하기 어려울 거다. 결국 비급여 쪽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지방 의료가 나아지는 것도 필수 의료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의료 수가를 올려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흉부외과의 경우는 수가를 2배 이상 올렸지만 여전히 지원자가 없다. 생명의 최전선에 있어서 늘 코드블루와 마주하고 있고 늘 응급상태에 언제 콜이 올지 모른다. 아예 병원 옆에 집을 구한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삶에 우리가 존경 이외에 해줄 것이 있을까?


  자료를 조금만 찾아봐도 꽤 괜찮은 제안들이 있다. 그래서 지금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임용 교사 제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해당 지역의 사범대, 교대를 졸업하면 해당 지역에서 교사 생활을 하듯 의대도 해당 지역 의대를 졸업하면 해당 지역 병원에서 일정기간 일해야 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물론 공립학교처럼 많은 공공병원을 지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의료는 사실 공공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민간에만 맡겨둬서는 안 될 것 같다. 특히 필수 의료 과목을 더더욱 그렇다.


  사실 유럽의 많은 의사들은 대부분 공무원과 비슷하다.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의사 증원을 해달라고 시위를 한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OECD 중에 뒤에서 2등이라고 계속 강조하지만 나라마다 사정은 다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미국처럼 시원하게 진료비를 낼 자신 있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국민과 의사 모두 증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힘들게 의사가 되었는데 쉽게 돈 벌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의사들은 이번 사태에 비껴나가 있다.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같은 개인 병원에서 시위를 참여한 걸 본 적이 없다. 정작 힘든 사람들이 나와 시위를 하고 있고 퇴로를 열어주지 않았기에 강대강 대치를 하고 있다. 어쩌면 사명으로 일하는 진짜 의사들을 악마화시키고 독화살을 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단순한 의사 증원은 지금 학원가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의대 가기 가장 좋은 시즌이라고 벌써부터 난리다. SKY를 비롯한 카이스트 포스텍 학생들의 이탈도 감지된다. 이미 이 사회에서 의대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심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는 의사들의 세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위대한 기업은 이공계가 이끌고 있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실타래는 기술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 문화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경쟁을 시키는 입시 제도의 문제일 수 있다.


  의사들의 월급이 배가 아픈가? 그건 의대를 가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의사 면허 박탈해서 굶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옛날과 다르게 의대를 보냈다는 건 이미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박탈당한다고 굶지 않는다. 카르텔에 분노하는가? 그럼 왜 정치권에는 분노하지 않는가? 복지가 잘되어 있다는 북유럽에서도 의사의 급여는 평균 급여의 4배 정도 된다. 하지만 그것이 불만이어서 미국으로 이민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외국 의사를 고용하자고? 이미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에 오지 않을 뿐이다. 대신 한국 의사들은 미국으로 많이 간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공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의사들도 동남아시아 의사들을 들이자는 얘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의대 증원이 단순했다면 왜 다들 어려워했을까? 우리 사회에서 의대라는 건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의 가운데 즈음에 있기 때문에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의사들의 힘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의대를 태풍의 눈으로 계속 밀어 넣은 정치권과 우리 사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정부는 2000명 증원하기 위해 7000명이 넘는 의사를 잃는 셈을 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서는 아픔이 있어야지 (당연히 없는 자들의 아픔이지)라고 얘기하는 프리더먼 식 신자유주의 셈법이다. 오늘도 면허 정지를 입에 놀리지만 계속 끌고 있다. 아이를 반으로 잘라 주겠다고 했던 솔로몬의 얘기처럼 상대방이 착한 엄마이길 바라는 이런 정책은 정말 무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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