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에 정치색이 묻어 있다.
2월. 아이의 갑작스러운 크론 진단과 의사들의 파업이 겹쳤다. 아이를 담당한 교수님은 여기 어린이 병동은 전공의가 없이 운영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자세로 아이를 대해주니 믿음이 컸다. 두 번의 가퇴원과 두 번의 응급 입원을 하면서 아이가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넘치던 교수님의 말씀은 조심스러워졌고 부모만큼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밤을 지새우며 아이 옆을 지켜 주셨다.
전공의가 부족하다는 말이 무색한 듯했다. 전공의보다 베테랑의 교수님들이 직접 진료해 주시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았다. 실력도 인성도 부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호사 분들도 하나같이 친절했다. 방사선과 촬영을 해주시는 선생님들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얘기해 주셨다.
사달은 두 번째 응급 입원 후 생겼다. 갑작스러운 대량 혈변을 본 아이는 혈압이 떨어지며 집중치료실로 이동했다. 긴급할 시 혈관 조영술로 지혈을 해야 했지만 전공의가 없어 어렵다고 했다. 교수님은 차선책으로 외과 교수님을 수소문해 주셨다. 수술은 어떤 경우에든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아들은 밤새 곁을 지켜주신 교수님의 정성이 통했는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후 교수님도 많이 놀라셨는지 응급라인을 만드시고 언제든지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어제 또 대량 혈변을 봤다. 걱정되셨는지 당직 교수님은 새벽에 혈관 조영술을 하자고 하셨다. 서울에서 개인적인 일을 보시던 담당 교수님이 한 걸음에 내려와 주셨다. 감사했다. 시술은 출혈이 멈춰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게 또 큰 고비를 넘겼다.
전공의 파업을 눈앞에서 겪고 보니 응급실에서의 전공의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원망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운 밤을 지새웠지만 그런 사달이 날 것을 알면서도 아무 대책 없이 밀어 부친 정부가 더 원망스러웠다. 의사들 반발은 하루 이틀의 얘기도 아니고 완충제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누구에 좋은 것일까 싶었다.
전공의 없이 병원을 운영하는 교수님의 말씀이 교수님들의 혜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4년 전부터 지원하는 전공의가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나니 너무 안타까웠다. 교수님은 논문 쓸 시간 조금 줄여 환자 보면 괜찮아요라며 너털웃음을 보이셨지만 그곳에 이번 사태의 핵심이 있었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방법인가? 그 속내에는 정말 정치색은 없나? 대학은 서울대보다 인기가 좋은 의치한(의대 치대 한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것이 학교 존속을 위해 중요하다. 의대를 가지지 못한 대학은 너 나 할 것 없이 의대 개설을 꿈꾼다. 정말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까?
대학 병원 의사의 연봉은 2억이 좀 못된다. 동네 병원은 3억이 넘는다. 동네 병원의 대부분은 미용을 목적으로 한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가 대부분이다. 비급여 진료 과목으로 보험과 상관없다. 그리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동네 소아청소년과는 대부분이 보험이다. 5분 진료가 그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개원을 하면 당연히 비급여 과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오늘도 우리는 소아과 오픈런 해야 한다.
개인병원 소아과도 이런데 대학병원은 오죽할까. 후임이 없어 교수들끼리 꾸려가겠다는 것이 정말 정상인 건가. 고마우면서도 또 죄송스럽다. 백발의 교수님이 응급실에 밤을 새우며 당직을 서는 모습이 안쓰럽다. 정부는 정말 의대 증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얘기하지 않고 있다.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성형수술 비용이나 조금 줄어들까?
의대 증원은 단지 병원장들이 값싸게 의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사들은 제대로 진료를 할까? 지금도 개인 병원보다 돈도 못 벌고 책임은 막중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에 도움이 될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생긴다.
혹자는 변호사 증원과 비교하지만 변호사가 증원되었다고 변호사비가 싸진 것도 아니다(변호사 월급은 줄었겠지). 오히려 돈 되는 변호를 위해 발버둥 칠 뿐이다. 국선 변호사 중에서 내 일처럼 변호해 줄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의사 증원이 결국 돈 되는 의료로만 향한다면 결국 사보험의 영역은 확대될 것 같고 어려운 사람은 혜택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많은 진료와 검사, 입원과 중환자실을 들락날락하면서 받아 든 고지서에서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를 느낀다. 그동안 월급에서 가져간 그 돈이 이렇게 쓰인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의료가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이렇게 증원을 호들갑 뜰만큼 급한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 상대적 빈곤율 꼴찌, 관광객 회복률 꼴찌, 출산율 꼴찌, 증시 꼴찌. 참 꼴등이 많은 나라다. 해마다 낮아지는 혁신 지수, 이번에 중국에게 추월당한 국가 중요 과학 기술.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GDP. 우리나라에 중요한 게 정말 많이 외면당하고 있다. 길게 보고 다뤄야 할 문제는 길게 보고 다뤘으면 좋겠다. 힘든 건 결국 국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