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의 아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곰씨 오만가치 Mar 26. 2024

장이 예민한 아이

소아 크론병에 대한 일지

  여보!


  자다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3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꿈이었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잠에서 깼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찰나의 순간이다. 아내는 지금 병원에 있기 때문에 불렀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지도 3주쯤 되었다. 소아 집중 치료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가 일반실로 옮겼지만 혈변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교수님들도 걱정인 듯하다. 장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쉽게 확인할 수가 없다.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크론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별의별 생각을 했다. 과민성 대장인 아빠보다 더 민감한 장이여서 그랬을까. 어려서 호통을 많이 쳐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랬을까. 꽤나 예민하고 자주 울었던 아이라서 그랬을까. 사랑이 모자랐을까. 후회는 그렇게 쓰나미처럼 부부를 덮친다.


  2024년 03월 25일. 세 번째 퇴원을 했다. 심각하지 않은 것 같아 일주일 만에 퇴원하기를 두 번. 염증 수치도 아이의 상태도 멀쩡 했다. 그전 퇴원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 서 두 번의 퇴원은 가퇴원이어서 다시 입원했을까. 주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기에 월요일 퇴원을 했다. 이번에는 교수님들도 아주 오랜 시간을 확인하고 퇴원을 시켜 주셨다. 이제부터 정말 긴 시작점에 제대로 서게 된 것이다.




  2024년에는 문서 복이 있다 했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이 생길 거라 했다. 마지막으로 금전적인 운이 있을 거라 했다. 부부는 올해 자격증이나 상 같은 걸 받을 일이 있나라고 생각해 봤고 그동안 골치 아팠던 인연들과는 다소 느슨해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대한 인연들이 생길 거라 기대했다. 일이 잘되어 돈도 많이 벌지 않을까라며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종교나 미신을 믿지 않는 부부지만 재미 삼아하는 그런 농담은 즐거웠다.


  그 문서 운이라는 게 수북이 쌓인 진료 명세서 일 줄이야. 새로운 인연이라는 게 친절하신 교수님들과 서로를 걱정해 주는 환우 동지일 줄은 몰랐다. 아들의 입원 소식에 병원비 하라며 십시일반 보내준 금전적인 도움이 올해의 금전 운일까? 올해 금전 운은 좀 더 큰 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금 억울하니까.


  소아크론을 확진받았을 때만 해도 아주 길게 보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을 가져가야 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이 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치료제도 발전하고 있다. 살다 보면 언젠가 완치하는 날도 오겠지. 지금도 관해를 잘 유지하면 일반인과 다르지는 않다. 그저 가려야 하는 게 많은 민감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가수 윤종신의 이야기로 세상에 좀 더 잘 알려지게 된 크론병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었다. 우리가 다니는 대학 병원에도 500명이 넘는 환우가 있다고 했다. 주위에도 말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누나 친구의 아들이라든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도 있었다.


  크론병에 대한 카페나 밴드도 많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정리할 공간이 필요하여 이렇게 글을 써보려 한다. 많은 선배 환우 가족들의 노하우를 익힌 나만의 공개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