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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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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27. 2024

아이는 관심이 필요하다.

소아 크론병에 대한 기록

 "이상하단 말이야"

  아내는 혼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말한다.

 "뭐가?"

 "감기도 아니고 열이 났다가 안 났다가. 갑자기 훅 올랐다가 괜찮아졌다가"

 "그렇게 이상하면 다른 병원에도 한 번 가 봐"


  평상시에도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곧잘 생기는 아들이다. 배가 아프다는 말에 화장실을 가봐라고 했지만 "화장실 가도 아무것도 안 나온단 말이야"라며 되려 짜증을 낸다. 짜증을 내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배가 따뜻해지면 좋아지겠지라며 처제가 마사지하라고 사준 온열 시트를 건네준다.


 "이거라도 대고 있어"


  하루는 항문이 아프다며 난리다. 엉덩이에 치루가 생겼다. 아내는 "항문외과도 가야겠네"라며 병원을 예약한다. 선생님은 어린 나이에 수술할 것도 아니라며 연고 하나를 처방해 줬다. 아들이 계속 아픈지 난리다. 그런 경험이 없는 나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아내는 따뜻한 물로 씻고 손가락을 움직여 안으로 넣는 법을 가르쳐 줬다.


  소아과에서는 별 증상도 없는 열이 난다고 신기해했다. 다들 독감에 난리인데 멀쩡히 온 아이가 열이 나니 말이다.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먹인다. 그러면 다시 내린다. 해열제를 너무 많이 먹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원래 아들을 진료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개인 병원을 닫으시고 조금 큰 병원의 페이 닥터로 들어가셨다. 소중한 소아과를 하나 잃었다. 조금 멀지만 특별한 증상이 생기면 찾아가게 된다. 


 "아침에 대기 뽑았는데 67번이야"

 "오전은 안 되겠네"

 "일단 학교는 보냈어. 오후에 다시 뽑아 봐야지"


  아내는 오후 진료 예약창이 뜨자마자 신청해 대기 15번을 잡았다. 아들을 학교에서 데려와 택시를 차고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마저 쉽게 잡히지 않아 어렵게 잡은 대기를 놓치는 게 아닌지 마음이 초조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만나려고 했던 선생님은 휴진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분도 잘 보는 걸로 유명해서 선생님께 보이기로 했다.


  아내는 아들의 증상을 얘기하니 의사 선생님의 반응이 의외다.


  "엄마는.. 얘가 나이가 몇 갠데 구내염이에요?"


  그리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진짜 구내염이 있네"라며 계속 살펴본다. 옆에서 아내는 소아과에서 들은 얘기, 항문외과에서 들은 얘기를 모두 선생님께 했다. 


 "항문외과에서 치질이 있는 것 같아서..."


  항문외과 얘기에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바뀐다. 


 "엄마, 잠시만요"


  아이의 엉덩이를 보자며 바지를 벗기려는데 잘 되지 않아 아내가 도와 항문을 선생님께 보였다.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아내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엄마, 잘 들어요. 소아크론인 거 같아요. 걱정하지 마시고요. 내가 소견서 써줄 테니까 바로 큰 병원 가봐요. 그기 이름이 외 자인 선생님이 있어요. 꼭 그분에게 가셔야 해요. 그리고 확진받고 나면 다시 나에게 와요."


  아내는 베체트 병까지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베체트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우선 확진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아내는 병원을 나서며 나에게 전화로 설명을 했다.


 "집에 가서 예약이 되는지 전화해 보려고"

 "전화 예약이 돼? 바로 가보는 게 맞지 않아? 멀지도 않은데.."

 "그렇네.. 기사 아저씨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주세요."


  다행히 집 근처에 대학 병원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지방에 소아 응급 병동이 있는 지역이 여기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내는 대학 병원에서 예약을 마쳤다. 명절 전이라 자리가 있을 거니 빨리 가보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원무과에 얘기를 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소개받은 그 외 자 이름의 교수님은 보자마자 크론 같다며 이틀 뒤에 바로 검사를 잡아 주셨다. 아무런 대기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는 게 우리에겐 정말 큰 행운이었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장이 민감한 줄만 알았지. 내가 과민성 대장이라 아들도 아빠 닮은 줄만 알았지 크론병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니 교수님은 "앞으로 아무것도 못 먹을 텐데 좋아하는 거나 잔뜩 먹이고 오세요"라며 걱정을 들어주려 듯 말했다. 병원에는 크론 환자만 500명이 넘고 다들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했다. 그리 늦지 않게 잘 왔다고.


  갑자기 찾아온 난치병에 놀람도 잠시 다시 차분해졌다. 아내는 큰일이 되려 담담해지는 성격이랄까. 아내가 든든해 보였다. 나쁜 것보다 좋은 걸 보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와. 우리 아들 신의 아들인 거야?"

 

  크론병은 희귀 난치병으로 병역 5등급 면제에 해당한다. 아빠는 전문연구요원으로 회사에서 군생활을 했고 큰 아빠는 보건소에서 근무했다. 집에 할아버지만이 군대 다녀온 남잔데.. 또 한 명의 남자가 군대를 피하게 되었다.


  "그때는 군대 안 가게 될 수도 있는데.. "


  괜히 농담 아닌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꿔 본다. 결과는 확정적인 것 같지만 혹시라는 생각은 그만둘 수 없는 듯하다. 


  설날 앞뒤로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 앞에도 휴가를 붙였다. 아들이 검사할 게 있어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에 상사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약간의 여운을 두며 "알았다"라고 답했다. 길지 않은 연휴를 일주일 넘게 쉬게 되었다.




  크론병은 장 전반에 걸쳐 발생한다. 보통은 소장과 대장이 연결되는 회장 쪽에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소장이나 대장에 발생할 수도 있다. 장에 관련된 질환이기 때문에 구내염이나 치루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장에 상처가 생기기 때문에 열이 발생한다. 

 

  크론의 경우 희귀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의사가 아니라면 발견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 병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의사는 알아챌 수 없을 수 있다. 결국 동네 병원에서 발견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1차 병원의 소견서가 필요하다.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병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은 원래는 서양에서 발생하던 병이었지만 우리의 식생활이 서양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두 배가 되었다. 이 병은 유전적인지 후천적인지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고 어릴 때 항생제를 너무 많이 복용하면 대장 미생물 생태계가 무너져서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남들 다 먹는 과자나 음료를 그렇게까지 먹이지도 않았는데도 발생한 걸 보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 그런 것 같다. 불안 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스트레스는 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참 어려운 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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