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불행한 일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
무얼 먹여야 하냐는 질문에 담당 교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해주세요"라고 했다. 앞으로 한 동안은 못 먹을 테니. 그 말이 더 슬펐다. 학교를 다녀온 아들에게 좋아하는 볶음밥을 해줬다. 다음 날이 딸아이의 졸업식이라 꽃집에 들러 꽃을 미리 주문했다. 조금 늦게 나오는 바람에 약속 시간까지 빠듯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다.
"꽃을 두 개 더 주문했어. 하나씩 챙겨주면 돼"
차에 타며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어린이집부터 함께 지낸 딸아이의 두 친구의 졸업도 챙긴 모양이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선물을 미리 챙겼다. 마음이 쓰였는지 꽃도 주문했다. 좋은 기억도 많았고 트러블도 있었지만 중학생이 되면 자주 볼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걸 챙기는 아내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병원에 완전 딱 맞춰 도착하겠는데?"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원무과에 들러 입원 소속을 밟으라고 했는데 조금 헤맸다. 원무과에서 얘기하고 어린이 병동으로 바로 오라는 걸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래도 잘 도착했다. 여전히 심각함을 모르는 아이는 해맑다. 귀여운 환자복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우리 아들 잘하고 만나"
그리고 나는 딸아이 졸업식으로 향했다. 딸아이 졸업식을 못 보는 아내를 위해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검사를 위해 하루 전 입원을 해야 했다. 내시경과 MRI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한 명으로 면회도 할 수 없다. 물론 불쑥불쑥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소아 병동인 만큼 최대한 문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입원에 수시로 필요한 물건이 생겼다. 병원에 갈 때마다 준비물을 챙겼다. 다행히 병원이랑 집이랑 멀지 않았다. 아이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링거를 맞았고 피를 뽑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잠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장을 했다. 겨우 다 먹은 관장약. 자다가 신호를 놓쳐 화장실 가는 길에 변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살짝 지리기만 했다. 그래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엄마에게 괜히 짜증을 부렸단다. 그리고 두 번째 일이 벌어졌을 땐 혼자 바닥을 치우고 마르라고 문까지 열어 두는 배려를 했다. 그렇게 잘 해내고 있었다.
현실 파악이 아직 되지 않았을까? 아이는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집 밖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병원도 하나의 체험 학습 같아 보였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얘기해 줘야겠다고 했다. MRI를 찍으러 갈 때에도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신기한 기계를 좋아하는 아이는 MRI라는 것도 흥미로웠을 거다.
다음 날 내시경을 하고 바로 소아크론 판정을 받았다. 담당 교수는 초중기라고 했다. 약물 치료 없이 바로 경장식을 시작하면 될 거라 했다. 경장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기 일주일은 병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다. 먹지 못하면 수액이나 영양제를 맞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먹지 않고 버티면 큰일 날 뿐만 아니라 행여 다른 음식을 먹으면 모든 것이 헛수고기 때문이다.
검사만 받고 퇴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일주일 입원을 해야 했다. 경장식 훈련을 마치면 퇴원한다. 어쩔 수 없이 명절에는 딸과 둘이서 다녀야 할 것 같다. 부모님께 장모님께 어떻게 전해야 할지 걱정이다. 일단은 장이 좋지 않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누나랑 얘기를 해 봐야겠다.
때때로 불행한 일은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우리가 딱 깨 놓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살지 않으려 노력했으니까 원한은 없을 텐데 우리에게도 그 때때로가 왔다. 불행해도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 아이의 병원비라도 하라는 듯 꿈쩍도 하지 않던 주식이 상한가를 쳤다.
어쩌면 길고 긴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들은 신의 아이(5급 병력 면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