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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n 13. 2024

졸업식

아들은 입원, 딸은 졸업

  내시경을 마치고 아이는 소아크론 초중기라는 확진을 받았다. 따로 약물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여서 경장식을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보건소에서 나오는 엘리멘탈(無맛)은 바로 "맛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사제 경장식은 먹을만한 듯했다. 바닐라 커피 맛인 듯한 경장식은 잘 먹었다. 하지만 계속 먹으면 질리겠지. 여러 맛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 경장식 잘 먹었다며?"

 "응! 엄마 마시던 커피 향이 나"

 "그래? 집에 오면 아빠 커피도 갈아주고 해야지"

 "언제?"

 "집에 오면"

 "알았어!"


  드립커피를 내려 먹을 때 늘 커피콩을 자기가 갈 거라며 하던 아들이었다. 커피를 마시진 못하지만 향을 좋아했다. 


  간호사 이모들의 칭찬이 좋았는지 잘하고 싶었는지, 내시경에 이어 바로 캡슐내시경 할 땐 잘 안된다고 속상해했다. 대장 내시경은 소장까지 촬영이 안되기 때문에 캡슐내시경으로 확인한다. 내시경을 삼키면 내시경이 장을 타고 내려가면서 여기저기를 찍게 된다. 근데 그 크기가 만만치 않아서 몇 번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삼키지 못했던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캡슐 내시경은 크기도 커서 어린아이들이 삼키면 장에 걸릴 수도 있고 걸리게 되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 특히 크론처럼 장이 아픈 질환이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상처가 나고 아물면서 장이 좁아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랜덤으로 찍기 때문에 제대로 촬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못했어~"라며 슬퍼하는 아이에게 간호사가 바로 응원한다.

 "이거 형아들도 잘 못해,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아침에 아내가 부탁한 물건을 병원에 가져다주고 꽃집으로 향했다. 예쁜 꽃 세 송이가 놓여 있었다. 다 같이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다. 딸아이의 졸업식. 합주부를 하고 있던 아들은 누나 졸업식에서 축하 공연도 할 예정이었는데 못하게 되었다. 


  꽃집까지 들렀다가 집에 오니 시간이 넉넉지 않다. 급히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겼다. 늘 아내가 해주던 고데기로 스스로 해봤다. 어설프지만 안 한 것보단 나았다. 졸업식장에 들어서며 딸아이의 친구 엄마들에게 졸업 선물을 건넸다. 아내의 부재에 대해 묻는 질문에 아들이 아파 병원에 있다고라고 전했다. 자신들은 준비도 못했다며 미안해한다.


  급식실을 정리한 작은 공간. 아들이 진행하는 어설픔. 초등학교 졸업식은 이런 느낌이었던가?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딸은 아빠를 발견하곤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도 팔을 들어 존재를 확인시켜 줬다.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가 가장 아쉬웠을 테니까. 내가 연락하는 사이 엄마들도 서로 연락을 했던 것 같다. 병원에 간다고 정신도 없었을 텐데 고맙다 했단다.


  6학년 교실에서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고 딸아이와 학교를 나섰다.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딸은 "아빠, 이런 옷도 있었어?"라며 웃는다. 원래부터 코트는 잘 안 입으니까 신기했나 보다(아니, 일할 땐 입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있었지. 아빠한테 관심이 없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집으로 돌아와 딸이 먹고 싶다던 짬뽕을 시켰다.  병원에 가서 엄마를 만나고 오자고도 했다. 가져다줘야 할 것도 있었고 졸업식에 가질 못한 엄마의 아쉬움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엄마와 딸이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전한 뒤 집에로 돌아오는 길에 딸이 가지고 싶어 하던 문구를 사 안겨 줬다.


  즐겁고 기쁜 졸업식이어야 하는데 괜히 차분하기만 하다. 아빠 닮아 그런지 딸은 이런 이벤트에 그다지 들뜨지 않는 편이다. 그냥 학교를 졸업한다는 사실이 더 좋은 느낌이다. 엄마 아빠 앞에선 여전히 밝음이다. 스스로 할 것 챙겨하며 집 분위기를 잘 채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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