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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n 11. 2024

취미는 글쓰기입니다.

'사랑 그리움 그리고 커피 한잔' 쥔장 어디 간 거야?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라고 하면 한참을 고민하며 괴로워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글쓰기가 적성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공모전에도 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유료 뉴스레터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다가 말이 조금 안 맞고 읽기 불편하면 수정하는 정도다. 오타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며 자동 고침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덕분에 AI의 이상한 교정이 담긴 글도 남아 있다.


  어릴 땐 글자도 참 정성 들여 썼었다. 방학 숙제로 상도 받았으니까. 중학교에 입학하니 여자애들 글자가 너무 예뻐서 따라 쓰다 보니 어느새 나름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글자체를 얻었다. 덕분에 남자애들 놀리는 가짜 편지에 나의 능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가끔은 너무 비슷해서 제대로 속인 기억도 있다. 나는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늘 공모자였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신 어느 수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글 쓰기를 했다. 10분인지 15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홀로 13줄이라는 압도적인 양을 제출했다. 누가 가장 많이 썼는지 물어보는 교장 선생님께 당당하게 13줄이라며 말했다. 선물이라도 주실 줄 알았는데 원치 않은 발표를 하게 되었다. 수업 종이 울려 나의 발표는 멈출 수 있었다.


  편지도 많이 적었던 것 같다. 편지 받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많이도 적었던 것 같다. 친구들의 노트팅(노트에 글을 적어 주고받던 일)에도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때 나의 이름은 '네모'였다. 네모는 '이름 없음'을 뜻하는 나디아의 '네모'선장에서 따왔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 어떻게 인연이 닿아 들어간 카페에 '특별 회원'이 되어 버렸다. 어느새 운영자는 사이트를 맡기곤 잠수를 타버렸다. 유료 서버라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질 카페였다. 그동안 열심히 손님을 맞이했고 또 예쁜 말을 많이 해줬던 것 같다. 많이 아픈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위로하는 일이 때론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다. 


뛰어가든 걸어가든 맞는 비의 양은 비슷하데요.
많이 아프고 빨리 괜찮아지길 원하시겠지만,
조금씩 오래 아파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런 손꾸락 오글거리는 글을 잘도 써댔다. 지금도 비를 좋아하지만 당시엔 비를 흠모하는 수준이었다.


  논문과 보고서는 또 다른 글쓰기지만 재밌는 글쓰기는 아니다. 그래도 무언갈 짧은 말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보고 받는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내용을 잘 담아야 한다. 글을 잘 쓰는 것 이상으로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번번이 실패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리는데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물건을 찾습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서문은 어떻게 시작하고 구성은 어떻게 할까. 더 나은 문장은 없을까를 고민하는 웃픈 일도 있었다. 나도 딴에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건가. 두 줄 남짓한 글을 10분 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내가 웃겼다.


  지금은 또 이렇게 나만의 공간에 글을 끄적인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상대방의 억지 주장에는 좀 더 멋지게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인생은 글쟁이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참 잘 선택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재밌게 하다 보면 닿는 날이 오겠지.


  그냥 하루 동안 쫓겼던 마음을 환기시켜 주는 역할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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