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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회사 유감

출장 포비아

출장 자체가 이미 스트레스.

by 느곰씨 오만가치

나는 출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나는 집으로 퇴근하는 삶을 사랑한다. 아무르 늦게 퇴근해도 주말이고 뭐고 한 달을 가득 채워 출근을 해도 집으로 퇴근하는 삶을 지향한다. 그곳이 나의 안식처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흩틀어지지 않는 루틴이 있는 곳이다.


국내 출장은 다닐만하다. 하지만 장기로 간다면 역시 스트레스다. 하지만 어떤 일이 생길 때 바로 움직일 수 있다는 안정감은 있다. 해외 출장은 그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더하여 장트러블(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은 장거리를 움직이고 싶지 않은 더 큰 이유다. 출장을 가지 않기 위해 힘들더라도 국내 업무에 먼저 지원을 했다. 그럼에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해외에 있었다.


팬데믹 이후 중국 투자가 시큰둥하다. 미중무역 갈등은 물론이거나 그동안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던 정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중국 내에서도 국산화가 많이 진행 됐다. 우리나라가 일본 기술에서 독립하기 위해 발버둥 쳤듯 중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제 가격으로도 성능으로도 승부 볼만한 곳이 되지 않는다.


그 덕분일까. 꽤 오랜 기간 해외 출장 없이 지내고 있다. 이제 움직이지 않으려면 최대한 힘을 써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누구보다 빠르게 국내 업무에 지원하고 있다. 늘 쉽지 않은 일이다. 남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가 늘 있다. 쉽지 않은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근데 이제는 미국 출장 얘기가 오고 간다. 베트남 현지화도. 이쯤 되면 프리랜서를 하는 게 나을까. 매번 출장의 공포에서 살아내는 것도 스트레스다. 이상할 정도로 집을 떠나는 게 싫은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출장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중국 전역에서 개발이 진행되던 2013년에 처음 해외 출장을 갔었다. 낯선 공항에 홀로 내려 겨우 용기를 내 택시 기사에게 호텔 명함을 내밀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택시 안에서 지나는 길을 모두 기억하려 했고 택시 기사가 건넨 음료는 손에 쥐기만 했을 뿐 마시지는 않았다. 호텔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도 잘 되지 않던 중국이었고, 회사는 그다지 신경을 써 주질 않았다. 제대로 준비가 안된 프로젝트였기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호텔에 돌아와서도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일을 했다. 밤중에 택시를 잡아 타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몇 주가 지나니 갑자기 심장이 두근대곤 했다. 통역을 해주던 조선족 직원은 보건실에 물어보니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가 받아온 작고 하얀 알약은 안정제였다.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내리면 모든 것이 괜찮아졌고 중국 공항에 도착하면 또 가슴이 답답해졌다. 거의 막바지까지 온 프로젝트였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퇴사를 얘기하며 복귀를 시켜달라고 했다. 말도 안 되게 복귀하자마자 그 공장은 2주간 셧다운을 했다. 대신 출장 간 인원들은 2주 동안 휴양을 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국 땅에 서 있다는 사실이 더 행복했다.


그렇게 중국에 진출한 회사에는 해외 출장이 점점 늘어났다. 국내 투자는 줄었고 대부분 중국에서 투자가 일어났다. 한국에 있던 회사들 마저 중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유럽 그리고 베트남이었다.


출장은 반갑지 않은 일이다. 일단 출장 자체가 강도가 높다. 늦은 퇴근, 주말 출근 그리고 장기 출장. 여행 가듯 가는 다른 회사의 출장과는 사뭇 다르다. 귀국하지 못해 아이가 태어나는 걸 보지 못한 이도 있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제때 가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힘들어 울고 있는 아내의 목소리를 핸드폰 너머로 듣는 것만큼 가슴 찢어지는 일도 없다.


아마 나의 출장 거부 반응은 모두 경험에서 나오는 듯했다.


가끔 해외로 향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직접적으로 맡는 게 아니라도 인원이 부족하거나 이탈하여 지원이 필요할 때 종종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럴 때에도 나는 출장은 절대 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 한다. 주말도 반납해 가며 최대한 완성시켜 보내겠다는 생각이다. 고객 검수가 끝날 때쯤엔 정말 질려 버린다. 출하를 할 때엔 번아웃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면 심각하게 날카로워져 가족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만다. 가족 곁에 있고 싶어서 무리한 건데 그게 되려 가족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 또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아내는 그냥 다독여 준다. 남편 출장 가는 걸 싫어하는 아내지만 어쩔 수 없음은 충분히 공감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탈했다. 현장에서 노력하던 이들의 부재는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이 회사에 대한 화를 만든 것 같다. 내가 할 일이 아니었는데 특근/야근해가며 막아줘야 하는 건지 싶다. 그리고 난 지금 뭘 하고 있고, 앞으로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만 남게 된다.


이런 삶을 살려고 이렇게 아등바등했던가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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