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무려 새벽 3시에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 사흘 만에 감았더니 표현 못할 만큼 상쾌하다. 씻지를 못해서 짜증이 많이 난 상태였는데 어제저녁에도 도저히 씻을 틈이 없었다. 첫째 숙제를 봐주고,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둘째 한글을 봐주고, 막내는 그냥 봐주고. 잠자리를 봐주고.
봐주고 봐주고 봐주는 일상이다 보니 나는 나를 돌볼 수는 없는 상태였다.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예전에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의 수학 선생님의 얘기가 계속 떠올랐다.
수학 선생님은 빨간 스포츠카를 끄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여고 동창이 있는데 결혼해서 아기가 2명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하고 이쁘고, 막 성공할 것 같은 친구였는데, 지나가다 보니 기름진 머리에 늘어난 티셔츠, 꾀죄죄한 몰골로 애들 2명을 등원시키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더 성공한 것 같다고 좋아했었다. 너희는 나중에 애를 키워도 씻고는 다니라며 되지도 않는 조언을 했었는데...... 지금 내 모습이 '꾀죄죄한 그 모습'이구나. 생각이 들어 머리를 더욱 박박 감았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없을 뿐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출산 전과는 전혀 다른 결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함부로 남을 깎아내리는 말은 아직도 여전히 전혀 공감을 할 수 없다.
뭐 어쨌든 나는 방금 전까지 꾀죄죄했다. 아이들을 케어하기에는 편한 옷이 좋아서 검은색 조거 팬츠에 티셔츠와 조끼를 입는다. 나는 진짜 편하지만 미혼인 친구들은 그렇게 다녀도 괜찮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눈치와 매너 없이 세상의 눈치를 조금은 봐야 하는 데 아이들이 너무 이뻐 내 모습은 생각도 못하고 다닌 것 같기는 하다. 내 인생의 중요도가 바뀌었으니 차림새가 뭔 상관이랴.라는 생각도 있었다.
막내가 4살이 된 오늘. 내 차림새를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래, 막내도 컸으니 옷 좀 한번 사보자.'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는 옷을 사지 않다 보니 어떻게 옷을 사는지 까먹었다는 것이다. 내 사이즈조차 모르겠다. 시간을 내어서 오프라인 매장을 돌아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나 옷을 제대로 사기는 할 수 있을까?
ㅎㅎㅎ
**이은경 작가님의 '오후의 글쓰기' 도서에 있는 글쓰기 과제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