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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Feb 18. 2021

안방 화장실은 엄마, 아빠의 도피처

우리에게도 휴식을 주겠니?

  


  

  우리 집은 전쟁터임에 틀림없다. 말끔하게 치워놓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아이들이 하원 하는 순간 들어오는 현관 입구부터 장관을 이룬다. 여기저기 벗어놓은 신발부터 외투, 가방에 마스크까지. 어쩜 이렇게 엄마의 잔소리를 부르는 행동들만 하는지. 눈치 빠른 막내는 나의 낮은 목소리 톤 듣고힐끔 쳐다보며 마스크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지금부터 엄마의 마음은 철저한 계획 속에 바쁘기만 하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그동안 해야 할 일들을 세 명 각각의 스케줄에 맞게 꾀고 있어야 한다. 남편은 정시에 퇴근하는 일이 적기에 내가 거의 해야 하는 상황. 혼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삼 남매를 잘 달래기도 혼내기도 하면서 할 일을 끝내는 것은 나의 숙제와도 같다. 

  

  엄마라면 밥 먹이는 것과 씻기는 것이 얼마나 큰 숙제인지 알 것이다. 나 또한 삼 남매가 식탁의자에 잘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몇 숟가락 안 남은 밥을 떠 먹여준다. 버릇 나빠지니 이러지 말라고들 하지만 내 속에 있는 화가 버럭 하지 않기 위해선 이 방법이 최선인 것이다.


  어질러진 온 집안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싱크대의 그릇들을 보면 숨이 턱 막히며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내 마음이 편하면 그만인 것이지 보이는 깔끔함이 더 중요한 것이겠느냐. 우리 가족은 수 년째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자는데 이 공간만큼은 치워져야 잠을 잘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치울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급한 것부터 처리해야 오늘 안에 잘 수 있으니 설거지는 다음으로 미룬다.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쳐다본다.

'아니 벌써 8시가 넘었잖아.'

아이들에게 양치 먼저 하라고 녹음한 것처럼 읊어대는 엄마의 속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연히 엄마의 속이 타들어가는지 모르니까 천진난만하게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겠지.


                          [ 우선순위에서 밀린 싱크대 ]



   한 놈씩 데려다가 몸을 씻기는데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때 남편이 퇴근했다. 이런 구세주가 있나. 딸은 언제나 아빠 껌딱지이기에 딸을 인계하고 나는 아들들을 씻다. 아이들의 목욕이 끝나는 순간 나는 오늘 할 일을 다 끝낸 숙제를 다 마친 것처럼 홀가분함과 큰 기쁨이 밀려온다.

 "이제 엄마 찾지 마! 엄마 화장실 간다!"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안방 화장실로 나는 도망치듯 들어가 버린다. 내가 환희에 찬 얼굴로 나만의 시간을 갖는 유일한 곳이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남편이 마시던 캔맥주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마시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왈칵 쏟았던 적이 있다. 집안에서 힘든 육아로 지친 엄마는 정작 쉴 곳이 화장실이라니. 어쩌면 어디선가 지금도 수많은 엄마들이 화장실에서 이러고 있을지 모른다.


   과연 나만 화장실이 이렇게 좋을까? 우리 집 성인 남자 또한 가끔 화장실을 이렇게 이용한다. 아이들 눈에 띄는 곳에 있으면 계속 불러대니 어쩔 수 없이 볼일을 본다며 후다닥 들어가서는 30분씩 있다가 나오곤 한다. 나도 그 마음을 알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남편을 측은하게 바라볼 때도 있다.


  얼마 전 TV 예능프로그램에 축구선수 가족이 출연했는데 인터뷰에서  선수 또한 축구보다 육아가 더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축구는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육아는 시작 휘슬은 있는데 종료 휘슬이 없다고 했다. 정답! 아무리 국가대표 선수였건 잘 나가던 연예인이든 간에 육아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며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놀라움의 연속인 것이다.


  결혼은 했지만 애를 낳아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성인이 아니라고 남편은 가끔 말하곤 한다. 애를 낳고 첫 3개월은 수면부족으로 오로지 기본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에만 집중하며 부모는 인간의 모습을 희미하게만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점점 인간다운 모습이 되는데 그 과정 또한 녹록지만은 않다. 이 과정을 겪어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크게 공감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은 커가는 게 당연하다. 아이가 크면 과연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 수가 있을까? 아니! 끝이 없다. 그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인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속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경험하며 진짜 성인(人)이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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