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기억

<음악인류>와 <음악이 흐르는 동안, 당신은 음악이다>를 읽고

by harmon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생물학적 인과관계로 볼 때 음악은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에서 음악을 청각적 치즈케이크라고 하였다. 그의 저서 <언어본능>에서 생물학적 인과관계로 볼 때 음악은 쓸모가 없다"며 "언어와 시각, 사회 추론 능력, 신체 경험과 비교해서 음악이 사라지더라도 인류의 생활 양식은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 스페르베르는 음악을 진화의 기생충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음악이 정말로 일상생활에서 혹은 인류의 삶 속에서 무용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음악인류>에서 대니얼 J. 레버틴은 이를 반론하기 위해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1) 먼저로는 음악이 성선택에 일조한다는 것이다. 유기체가 종 번식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음악을 필연적으로 구애활동과 유전적 활동을 위한 쓰임새로 활용하였다. 유전 돌연변이를 생각하더라도 유기체의 적응 특성이 되기까지 진화적 지연에 따라 최소 5만 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음악은 유전적으로 부호화되어 있다. 음악은 또한 춤과 연결이 되고 이는 동물들처럼 과시하는 용도로 쓰임새가 있다. (2) 두 번째는 음악을 이해하고 통함함으로써 인간과 원시인들의 진화에서 인지 발달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기여했기 때문으로도 본댜. 음악을 놀이의 형태로 받아들여 언어 발달 과정을 준비하고 탐구 능력을 육성하는 고차원적 통합 훈련이 되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뇌는 늙지 않으며,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신경가소성'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음악은 배우자를 찾고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앞서 언급한 적응 특성의 연장선에서 인간이 음악을 누구나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유대감과 응집력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세계화와 더불어 개개인의 네트워크 연결이 매우 촘촘해진 현대사회에서 음악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사회적 정체성은 물론 개인의 인격에 크게 관여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자아라는 우리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유용하고 강력한 수단이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당신은 음악이다>에서 빅토리아 윌리엄슨은 두 가지 연구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2007년 야나타 연구팀이 캘리포니아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초반 학생 329명을 데리고 음악 관련 기억을 조사한 것이었다. 100위 안에 들어가는 팝과 알앤비 음악 중 1,515곡의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각각 30초짜리 음원 샘플로 만들었는데 연구팀은 피험자들이 7~19살이었을 때 음악 차트 순위에 있던 노래들을 들려줬다. 그러고선 개인적인 추억을 질문하였더니 96%가 연결되어 있으며 대체로 5년 전 기억인 이른 청소년기에 해당하였다. 가장 많이 공유하는 기억은 친구와 동반자(47,28%)였으며 공통적으로 택한 감정이 '행복', '노스탤지어한', '젊은'이란 감정적 단어를 택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후속 연구에서는 청소년 13명에게(평균 20살) fMRI 스캐너를 활용하여 내측 중앙 전두엽 피질(mPFC)을 포함한 두뇌 영역 분산망 내에서 독특한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소리 내지 음악를 들을 때 내재된 지식과 감정, 정체성, 가치관 등 또한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억을 형성한다. 관련 에피소드로 열두 살 즈음에 아이리버 전자사전을 켜서 음악을 들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 순간만큼은 주도적이고 의지대로 음악을 선택하고 들어보는 첫 단계여서 그랬을까? 늦은 밤이었는지도 모를 시각에 방의 불은 끄고 점박이 이불을 덮은 채 블루라이트를 눈으로 들이키며 한국노래와 외국노래가 뒤섞여 도통 알지도 못할 곡들을 들었다. 아이유의 '좋은 날'과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등, 기징 기억에 남는 곡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Long Live'였다("I said, 'Remember this moment,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자고 말했어"). 이는 아직도 국내음악보다 해외음악을 좋아하는 선호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 이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도 영어 교과서를 펼치면 나오는 Zeeto와 영어 선생님의 팝송 추천 덕분이긴 했지만 이때부터 특정 음악에 선호도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청소년기에는 음악 감상을 통해 집단의 결속감을 유지하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음악은 자전적 기억 형성을 가능케 해주며, 감정적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해당 시기에는 편도체와 신경전달물질, 뉴런의 성숙과 가지치기가 진행되는 시기이므로 뉴런 네트워크 역시 강화된다.

우리는 취향 선호도에 따라 지나치게 복잡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음악을 선호하게 된다.

대니얼 J. 레버틴은 우리의 뇌가 음악을 고조파 배열로, 복합적으로 처리한다고 설명한다. 뉴런 네트워크는 소리 신호에서 음고나 음색, 음량, 반향이나 음길이 등을 시각 정보와 분리하여 병렬로 수행한다. 해당 자극은 신경 회로에서 감각 수용체를 비롯해 수많은 요소를 통합된 표상으로 결합하여 음악의 형태와 내용을 인식 가능하게끔 한다. 청각 피질에서 소리의 구성 성분을, 이후 중변연계 네트워크 전두엽 피질(특정 브로드만 영역)에서는 음악적 구조와 특징의 기대감을 생성한다. 소뇌는 리듬과 박자 감각을, 측좌핵(중격의지핵)과 편도체에서 정서적 반응을, 해마는 기억과 이전 경험을 회상하게 된다. 가사를 들을 때에는 브로카와 베로니카 영역 등의 언어 중추 자극이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특정 음악을 문득 떠올리게 되거나 들었던 비슷한 음악을 겹쳐보게 되며,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화음은 하나로 들릴지 몰라도 피아노는 피아노, 기타는 기타, 베이스는 베이스로 구분하여 인식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음악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이라면 코드를 맞추는 것은 물론 선율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곡이든 노래의 음고나 선율이 달라져도 인지할 수도 있다.


다중 흔적 기억 모형에 따르면 모든 경험은 잠재적으로 기억에 부호화되며 뉴런의 집단에 경험을 부호화한다. 또한 기억 부호화에 필수적인 해마가 동시에 활성화된다. 흔히 '수능금지곡'으로 일컬어지는 중독적인 음악을 들으면 가끔씩 귀벌레 현상(신경 회로가 재생 모드에 멈춰 몇 구절을 반복 재생)이 나타나는 것처럼, 이는 우리가 음악을 지각할 때와 기억할 때 같은 뇌 영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추가로 암시적 기억 체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반응 역시 작용한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자주 들었던 노래를 틀어두고 뇌를 fMRI로 측정하면, 우리는 어떠한 기억을 재생하게 될까? 뇌는 불필요한 단기억을 삭제하고 필요한 기억은 장기기억으로 보관한다(메모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비록 특정 기억은 뇌에 의해 왜곡되었을지라도 당시의 정서를 환기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덕분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Long Live'를 듣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내가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정과 confetti라는 특정한 단어를 떠올리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구들방에서 두툼한 이불을 덮고 음악을 마음껏 듣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단언컨대 음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