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과 혼톨로지

유령 음악과 백룸의 감성 미학

by harmon

최근 그라운드시소GROUNDSEESAW에서 진행하는 전시 <룸 포 원더: 상상의 문을 열다>를 관람하다가 백룸을 생각했다. 글로벌 아티스트 4인 에이든A?DEN, 마이클 페더슨Michael Pederson, 캠버 캐롤Kamber Carroll, 그렉 고야Greg Goya이 참여한 스트리트 아트와 참여형 미술 작품을 구경하면서였다. 공간에 비해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지 줄을 서서 구경해야 했는데, 체험형 전시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전부 사라지고 이 공간을 혼자서 구경하게 된다면 제법 오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공간은 출구를 찾을 수 없어서 되돌아가야 했고 이는 전시가 중간에 끊기게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이런 전시보다는, 나중에 백룸 전시가 나오면 꼭 가는 게 좋지 않나. Pillow Catle에서 개발한 <Superliminal>은 1인칭 퍼즐 게임으로 착시 현상과 원근법을 활용해 풀어나가는 전시 같은 게임이다. 그렇게 무섭지 않은 백룸 스타일에 고정관념을 깨부수기에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백룸 형식의 체험형 전시가 진행되면 어떨지 싶으면서도, 예전에 진행된 착시미술 테마전이 어느 정도의 이질감을 불러일으켰을지 궁금해졌다.

2019년 5월, 익명의 사용자가 4chan에 업로드한 사진

백룸(Backroom)은 인터넷 밈에서 탄생한 사이버 도시전설이자 괴담이다. 백룸이 리모르 시프만의 해석대로라면, 원본이 있으며 인터넷에 유포가 되어 불특정 다수가 분해와 결합을 통해 다른 콘텐츠로 재생산되는 완벽한 밈의 사례에 해당한다. 밈 허브가 커뮤니티 /creepypasta로 2019년 5월 12일, 4chan의 한 익명 사용자가 한 장의 사진과 글에서 촉발된 백룸은 보통 실내 구조물 안에서 무한히 반복되지만 공간은 대체로 비어 있는 경계이며, 입구가 보통 없고 게임처럼 레벨의 단계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진은 2002년 위스콘신 하비타운HobbyTown이라는 모형점이 입점되기 전 리모델링 당시에 찍힌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초점과 화질, 그리고 인적이 익숙한 공간이 주는 위화감이 불안함을 안겨준다. 밈이 된 백룸은 발터 벤야민의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바라볼 때는 분명 수용자 개인이 관객의 입장을 넘어서 사진과 형태를 조작하는 것으로써 촉각적 수용을 맺고 복제물로써 소비되고 있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녹화는 기시감과 광학적 무의식을 유도한다. 특히 레프 마노비치의 입장에서 백룸은, 0과 1의 비트로 이루어진 뉴머디어 객체라고 볼 때 원작자와는 더 이상 연관이 없는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지닌 데이터라는 점이 재강조된다. 인터넷 포럼 게시글, 동영상, GIF를 통해 기계복제적으로 생산되는 2차 창작물이 되었다(<밈의 계보학>).


씨네21 김소미 기자님은 백룸이 "무한히 반복되어 시각적으로 낯선 공간이기 이전에 바로 이런 감정적 불편함에서 생명을 얻는 문화적 코드"(<씨네21>)라고 설명한 바 있다. 10년도 당시 전이 공간(리미널 스페이스)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래로 공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위화감 있는 풍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 이래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나 호러 영상 제작에 힘입어 N차 창작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2년도에는 케인 픽셀Kane Pixels가 공개한 단편 영화 열풍에 이어 올해 5월 29일, A24에서 <Backrooms> 개봉 예정이기에 큰 기대를 받고 있다. CG나 심리적 공포를 유발하는 영상 등 호러 콘텐츠로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백룸 콘텐츠인 <그림자 복도Shadow Corridor>나 <이스케이프 더 백룸Escape the Backrooms>,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가 흥행한 바 있다. 해외는 백룸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적지만 비영리 교육 플랫폼으로 제작되거나 한국영상학회에서 백룸을 통한 호러의 궤적을 추적하는 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백룸의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아일릿의 두 번째 미니 앨범 ‘아윌 라이크 유(I'LL LIKE YOU)'의 타이틀 곡 MV에서도 백룸을 콘셉트로 삼아 몽환적인 감수성을 소화하였다.


공간은 정서에 의존할 수 있다(<공간주의>). 특히 백룸은 공간적 감각이 사이버스페이스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Y2K를 비롯한 복고적 감성과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감각을 선보인다. 학교나 놀이공원, 쇼핑몰이 텅 비어 있는 광경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다고 가정하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꼽기도 하지만 대체로 백룸 공간이 갖는 친숙하지만 불쾌감을 선사하는 경계성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드림코어, #리미널코어, #코즈믹호러와 같은 특유의 에스테틱Aesthetic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하위장르에 따라 기괴함이 섞인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함께 배치된다. Core, Punk와 같은 하위장르나 특정 미학을 수식할 수 있는 접미사가 붙게 된 것은, 리미널 스페이스 자체가 보통 과거의 향수와 동경을 이끌어내는 것은 동일하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의 미학에서 소개되는 개념 중 '원격현장감telepresence'처럼 다른 공간이나 시간을 경험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백룸이란 공간은 환각과 몽환을 일으킬 정도의 균일한 타일이 반복되고, 목적이나 방향성이 사라진 황폐화된 상실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류와는 다른 키치함이 비춰진다.


백룸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 음악은 보통 80~90년대 신스 사운드를 활용하여 마취적이고 비존재를 물씬케 하는 아날로그적 앰비언트가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글로켄슈필이나 뮤직박스를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아날로그적 감성을 살린 LP판의 잡음과 VHS 녹화음 등을 집어넣으며 공간의 으스스함과 언캐니함에 반영할 다양한 종류의 리버브, 변조 효과와 디스토션을 섞는다. 백룸은 팬데믹 전후로 정서의 결핍과 공허함, 반복적인 회귀와 회상, 망상과 심하게는 정신분열적인 정서를 반사하므로 10년대에 흥행했던 베이퍼웨이브Vaporwave와 힙나고직Hipnagogic과 같은 음악적 코드와 병행되기도 했다. 베이퍼웨이브는 반문화 및 저항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모호하게 처리되거나 왜곡되었다는 특징이 공통분모이며 사이키델릭한 특징이 있다. 힙나고직은 제임스 페라로에서 유래한 단어로 80년대 당시의 음악이 선잠을 자면서 당시 어른들의 음악을 무의식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부유감을 형성한다. 이들은 비트크러셔와 보코더, 새츄레이션 등을 통해 다양한 기법으로 사운드를 왜곡하였으나 해당 음악 장르는 모두 환각적이고 뉴에이지와 70년대 신시사이저 록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혼톨로지는 백룸 음악을 대표한다. 백룸이 혼톨로지와 연관되는 것은, 혼톨로지가 토막된 기억의 보존과 왜곡, 흔적으로 만든 유령 음악이라는 점에서 백룸의 사이키델릭한 입체 공간에 잘 부합하고 깊게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혼톨로지'는 마크 피셔Mark Fisher와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가 2005년 당시 포커스 그룹, 벨베리 폴리, 어드바이저리 서클 등 고스트 박스 소속 아티스트와 그 동료인 모던트 뮤직, 문 와이어링 클럽 등 주로 영국 아티스트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말이다(<레트로마니아>). 본래 자크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에서 언급했던 'ontology(존재론)'는 공산주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이 불가사의하게 논의되는 현상을 의미하였으나, 고스트 박스 소속의 음악이 유토피아의 상실과 비존재가 개념화된 듯한 환영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잃어버린 과거와 무의식, '언캐니함'을 포착한다는 느낌을 주며 60~70년대 영국적 노스탤지어를 디지털과 아날로그 음악으로 조합하고 신시사이저와 드론을 통해 표현한다. 혼톨로지라고 불리는 것은 음반 자체에서 루핑와 샘플링 작업을 통해 기타의 리프나 드럼의 소절, 보컬의 후렴 등 모티프나 음반이 남긴 잔상을 모조리 사후생산하여 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죽은 자를 음악에 참여시킬 수 있다는 으스스함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레트로 음악은 과거를 미화하고 향수의 아픔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매시업되는 반면 아픔과 고통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이 혼톨로지의 특성이다.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by The Caretaker

대표적인 음악가로 영국 뮤지션인 제임스 레이랜드 커비James Leyland Kirby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케어테이커The Caretaker가 있다. 그의 마지막 앨범인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는 알츠하이머 증상과 기억 상실로 인한 심연으로의 추락을 주제로 삼은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작품이다. 2016년~19년까지 총 6단계에 걸쳐 발매된 앨범은 6시간 30분 이상으로 환자의 향수와 불안, 절망을 건드린다. 알츠하이머 역시 7단계(GDS)로 구분되기 때문에 무증상을 제외한 여섯 단계의 음악으로 구분된다. 1~3단계는 기억의 회상과 증상의 거부, 고군분투를 담는다. 혼란을 겪는 구간인 4단계부터는 노이즈를 동반하여 6단계의 인지적 불가능이 도래한 순간까지 이어진다. 케어테이커의 음악은 산화철 입자가 부스러져 부식되고 재생 과정에서 특정 부분이 침묵되는 것처럼, 기억에 글리치를 유발하며 흔들의자 위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오프닝 트랙은 아름다운 백일몽으로 불리우며 왁스 실린더를 활용하는데, 'It's Just a Burning Memory'는 AI Bowlly의 'Heartaches'를 샘플링하여 행복을 표현하는 반면 북엔드 트랙인 'Place in the World Fades Away'는 오르간과 드론 사운드를 엮고 마지막 5분의 합창은 말기 명료성(terminal lucidity)을 표현한다.


혼톨로지 음악가 중에는 Oneohtrix Point Never, Boards of Canada, Position Normal 등의 선구자는 물론 배리얼은 혼톨로지 댄스라고 불릴 만한 음악을 내세워 70년대부터 00년대까지 브레이크 비트와 아날로그 사운드를 샘플링 및 접목하였다. 혼톨로지는 BBC 라디오포닉 워크숍에서 사용된 시리즈 창작물의 기괴한 사운드와 리버브의 리버브를 더한 전율을 형성하고, 프루스트적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그때가 좋았지'라는 일종의 레트로 감성을 구축해냈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는 틱톡에서 앨범을 끝까지 재생하며 듣는 챌린지로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팬메이드 버전을 양산해냈다. <ESCAPE THE BACKROOMS>에서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괴물에게 먹히는 장면은 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의문이 든다. 케어테이커의 음악은 과거를 지나치게 보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우리가 놓친 무언가를 붙들 수 있게끔 허공으로 손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케어테이커의 음악이 힙하게 소비되었다는 것이 과연 혼톨로지 음악을 향한 Z세대들의 관심과 동일한 것일까? 또한 혼톨로지를 통해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세대들이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향수를 되찾음으로써 선망의 대상을 찾고 현실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감추기 위함Anemoia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혼톨로지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앰비언트 같은 비교적 온라인 중심의 음악 청취 장르에서도 드러나는 듯하다. 젊은 세대에게 들이닥친 팬데믹 특수는 세상의 종말과 불확실성을 안겨주었고, 공포를 디지털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공간이 백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