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의 발자취를 따라서...왕과 사는 남자, 단종

동망정, 청룡사, 자주동천, 자주동샘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애절한 삶이 깃든 동망봉, 청룡사, 그리고 자주동천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과 창신동 일대에 모여 있는 역사적 장소들이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이별하고 평생을 그리움 속에서 살았던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았다.


​1. 청룡사(靑龍寺): 마지막 밤과 의지처


​정순왕후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기 전, 이곳 청룡사 우화루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남편이 떠난 후 왕후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추락한 그녀는 궁에서 나와 이곳 근처에 초막을 짓고 평생을 보냈다.


​당시 정순왕후를 가엾게 여긴 세조가 집과 식량을 내리려 했으나, 그녀는 "왕을 죽인 자가 주는 것은 받지 않겠다"며 거절하고 스스로 생계를 꾸렸다.


​지금도 청룡사에는 정순왕후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 남아 그녀의 꼿꼿한 기개를 전하고 있다.

​2. 자주동천(紫朱洞泉): 스스로 일군 삶의 터전

​청룡사 근처 암반에는 '자주동천'이라 불리는 작은 샘터가 있다. 궁에서 나온 정순왕후는 생계를 위해 옷감에 자줏빛 물을 들이는 염색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샘물에 비단을 담그면 하늘이 도운 듯 신기하게도 금방 자줏빛 물이 들었다고 하여 '자줏빛 물이 드는 샘'이라는 뜻의 자주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삶을 지탱하려 했던 왕후의 숭고한 의지를 상징한다.

3. 동망봉(東望峰): 60년의 그리움이 머문 곳


​자주동천 바로 뒷산 봉우리가 바로 동망봉이다. 정순왕후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바위 언덕에 올라 단종이 유배 간 동쪽(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이름의 유래는'동쪽을 바라보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그녀는 단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8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 올라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


​숙종 때 이 이야기가 전해지며 바위에 '동망봉' 이라는 글자가 새겨졌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채석장으로 쓰이면서 그 글자는 깎여 나가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자주동천을 끝으로 창신동 6호선을 타기 전에 카페 종로 92라는 찻집에서 대추차로 하루를 위로하다.

종로92카페에서 대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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