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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l 29. 2016

'오답'투성이 삶 끝의 '정답'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찾은 '정답'이 되는 방법

정답(正答)


'옳은 답'이란 뜻의 이 단어는 우리가 살면서 줄곧 찾고 싶어 하는 단어이다. 누구나 삶에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오답'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어 한다. '정답'으로 충만한 삶은 좋은 삶이고, 그렇지 않은 삶은 다소 꺼려지기 마련이다. 통상 '오답'인 선택은 '실패'로 이어지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실패'란 것은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삶은 '정답'뿐이지 않다. 그 누구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기 마련이고, 그 후에 오는 '좌절'과 '절망'의 감정은 때론 우리 인생을 괴롭게 만들며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내 곧 '포기'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러한 삶 속에서 '정답'만을 맞추는 사나이가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2009년에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는 인도의 퀴즈쇼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어떻게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는 고급진 교육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천재'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빈민가 출신으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할 정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정답'만을 찾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자말이 2천만 루피 상금까지 질문 하나를 남기고 있다.
그가 어떻게 한 것인가?


빈민가 출신 '자말 말리끄(데브 파텔 분)'은 퀴즈쇼의 최대 상금인 2천만 루피까지 한 문제만을 앞두고 있었다. 영화는 그런 그에게 어떻게 한 건지 질문을 던진다. 보기로는 '속임수를 썼다.', '단지 운이 좋았다.', '천재였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명이었다.'라는 4개가 주어졌다. 어떤 답은 현실적이고, 어떤 답은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 어떤 답은 물음표를 짓게 하고, 어떤 답은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년시절의 그를 본다면,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아니, 저 보기 외에 어떤 다른 보기가 있더라도 '정답'이 될 수 없을 듯 보인다. 자말은 자신의 형 '살림'과 함께, 빈민가에서 자랐다. 그들의 삶은 매우 불우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어떤 선택도 '정답'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악인들의 손에 들어가 위험에 빠지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오답'투성이 삶의 전형이었다. 그들은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정답'이 아닌 '오답'을 향해있었다.


우리들의 삶도 이러한 '정답'이 아닌 '오답'뿐일 수 있다. 점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정답'은 정답일 수 없다. 정답이라고 믿고 따르는 많은 선택들이 반드시 '옳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실패'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더욱이 나쁜 상황에 놓여, '오답'임이 분명한데도 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정답'이라고 여기고 쫓아가지만, 그것의 끝에 반드시 '성공'이나 '합격'이라는 정답을 확신할 수 있는 요소들이 놓여있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정답'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언제나 '불안'과 '걱정'이 함께일 뿐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닌, 버티는 것만 같은 자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그가 삶을 나아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것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라띠까!


주인공의 형 '살림'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라띠까(프리다 핀토 분)'에게 그는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다. 어렸을 때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악인 '마만(안쿠르 비 칼 분)'에게 도망치며, 자말과 라띠까는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자말은 언제나 그녀를 그리워하고 찾아 헤맨다. 후에 그녀를 만나기도 하지만 곧 주변 환경은 그를 막아서고 다시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영화에서처럼 '사랑'이 될 수도 있고, '행복', '평안', '휴식', '기쁨'이나 어쩌면 '성공', '명예'와 같이 어느 것이라도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자신만의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은 온전히 그것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게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자말이 몇 번이고 라띠까와 만나고 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또한 이러한 '목표'와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하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마지막에 '목표'가 되는 것들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 하루를 버티는 것으로 만족한다던가, 어쩌면 단지 '살아있어서 살아있다.'라는 느낌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사는 청년 세대는 'N포세대'라고 불리기까지 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여러 '삶의 요소'들을 지우는 것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듯 영화에서나 현실에서의 '주변 환경'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온전히 쫓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정답'으로 다 가기란 더욱 힘들기 마련이고, 때문에 아예 주어진 문제 자체를 바꿔 '정답'으로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자말은 결국 자신이 찾던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는 그에게 '포기'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 포기 안 할 거야. 절대로


자멜은 라띠까와 만나기 위해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의 형 살람은 이런 그의 태도에 넌더리가 났지만, 결국 그의 '도전 정신'을 인정하며 라띠까를 탈출하도록 도와준다. 자말은 또한 자신의 삶에서 그랬듯이, 퀴즈쇼에 나가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하였다. 얻은 상금을 모두 잃을지도 몰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그런 자세가 그를 나아가게 하고, 결국 그녀를 향하게 만든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영화는 알려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이기 마련이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상황은 더더욱 잔혹하다. 때문에 어쩌면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기 마련이다. '정답'만을 쫓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포기'하기를 택한다. 그것은 씁쓸함과 아쉬움을 남기지만, 현실을 빗대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우리가 찾은 '정답'은 '포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영화는 앞선 모든 과정들을 묶어 한 단어로 표현한다. 바로 '운명'이다.


D : 운명이었다.


주인공의 삶은 '정답'뿐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한 듯 보였다. 때문에 부모님을 잃고,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기도 하며 모든 것은 그것이 '오답'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오답'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정답'이 될 수 있었다. 퀴즈쇼로 상징된 것은 '인생'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삶 또한 우리가 '오답'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언제든 '정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퀴즈쇼'라는 것이 곧 그의 '인생'과 같았고, 그에게 '결여된 포기'가 그를 '정답'으로 가득 채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삶은 하나의 '운명'이란 단어로 한데 묶어, 그가 단지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것만으로도 운명이라고 칭하며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비록 '운명'이란 단어는 추상적이고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몰라도, 그가 삶에서 '운명'이 빛을 내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오점'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운명이란 것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사실 마지막에 문제의 정답을 그는 몰랐다. 단지 찍었을 뿐이다. 그 문제는 '삼총사'의 마지막 총사는 누구인지 묻는 것이었다. 문제에서 나온 '삼총사'로 빗대여 말했던 그의 삶에서의 정답은 '라띠까'였다. 전화찬스를 사용해 '라띠까'를 찾은 그는 그 자체로 만족하였다. 때문에 마지막 문제를 자신 있게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확률적이나, 불운했던 그의 삶을 통해서나 그의 답은 '오답'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던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은 그의 '오답'을 '정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될 운명을 만들어 준 것이다.


어떤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까지 네가 생각했던 것들 제각기 모두 제대로 된 답이었다고 생각해.' 우리의 삶에서 추구하는 것 앞에서 하는 선택이 '차선책'이어도 또는 '오답'이어도 단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마지막에 그것을 이루게 되었을 때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선택들이 '정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자신의 과거들에게 노래의 저 구절을 말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선택하자. 그것이 '오답'임이 분명해도 겁내지 말자. 우리의 운명은 '정답'을 품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단지 '포기'않고 나아간다면, 그 '운명'은 불현듯 우리를 찾아와 '정답이었어.'라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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