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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Aug 05. 2016

지금 우리는
어느 시간에 살고 있는가?

영화 '클릭'에서 찾은 '현재'의 소중함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시간'이란 것은 누구 하나 차별하지 않고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리고 아무도 그 시간을 막거나 되돌리거나 더 빠르게 하지 못한다. 때론 이러한 시간이란 것이 담고 있는 '평등'은 잔혹하기도 하다. 아무리 후회하거나 그리워해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아무리 바라고 원해도 미래는 미래에 있기 마련이다. 그 어떤 모습으로도 '과거'나 '미래'는 그 단어 그대로 해당 시간에만 존재할 뿐이고, 시간은 냉혹하게 우리를 외면한 채 묵묵히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는 듯하다. 누구나 '시간'에 아쉬움, 후회, 그리움, 희망, 바람을 담아내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시간'은 결코 한 사람의 손아귀에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 덕분에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한 번쯤은 원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06년 이러한 사람들의 바람을 실현시켜준 영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을 갖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평소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것을 소재로 삶을 그려낸다. 영화는 한 남자의 '씁쓸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냐?


주인공 '마이클 뉴먼(아담 샌들러 분)'의 삶은 마냥 행복하진 않다. '현실'이란 것은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승진을 하길 원한다. 때문에 그는 매일을 '일'에 매달리고, '가족'은 언제나 늘 뒷전이다. 결국 또다시 '현실'은 책임감의 무게로 그를 압박하고, 다시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그의 삶은 되는 일이 없고, 언제나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느 곳 하나 그의 자리는 없는 듯하다. 동시에 그는 풋풋했던 '과거'속 아내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느끼면서, 끝없이 '미래'만을 바라보며 '현재'를 단순히 소비시키고 있었다.


현실 속 우리에게서도, 이러한 '과거'나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의 배경에는 '고통스러운 현재'가 뒷받침이 되어준다. 물론 이러한 '고통'은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에 놓인 우리 자신을 스스로가 '희생'이란 단어로 갉아먹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현재'에 살아가기보단, 먼 미래나 과거 속에 자신을 두고 '현재'가 서둘러 지나가기만을 바랄지도 모른다. 각박해져 가는 현대 사회는 고통이란 단어로 칠해진 현실이란 불씨에 기름을 부었고, 우리는 하늘을 향해 영화에서처럼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냐?'라고 외칠 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에게 하나의 '행운'이 찾아온다. 


착한 사람에겐 때때로 휴식이 필요한 법이거든.


그는 '만능 리모컨'을 찾는 와중에, '모티(크리토퍼 월켄)'으로부터 한 '리모컨'을 받게 된다. 사용법은 그냥 '대고 누르기'정도인 이 물건을 주면서 그는, '착한 사람에겐 때때로 휴식이 필요한 법이거든.'이라고 말한다.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그를 뒤로 한채 마이클은 리모컨을 받아서 나온다. 리모컨이 조종할 수 있는 건 바로 '시간'이었다. 뉴먼은 과거를 맘껏 살펴볼 수 있게 되고, 미래로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유일한 단점은 '미래로 간다면 다시 현재로 돌아오지 못할 뿐이었다.' 즉, '빨리 감기'를 해버리면 미래의 시간에서 이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리모컨을 이용하여 부부싸움이나 가족 모임과 같은 그가 '미래'로 나아가는데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들을 모두 넘겨버리게 된다. 


그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 또한 미래의 한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면, 누구나 주저 없이 미래로 가곤 할 것이다. 오랜 취준생에겐 '취업'하는 순간이나 힘든 군생활에 있는 사람은 '전역'이 될 수도 있고, 하루하루 '대입'이라는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수험생들에게는 '합격'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에게 목표가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목표는 미래에 두기 마련이다. 영화 속 그처럼 어쩌면 '가족'과 같은 것도 방해물처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명절날에 심심찮게 '공부한다고 못 왔어요.'는 흔한 이유이고, 아무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려'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많다. 이러한 우리들이 향해있는 '미래'는 자신들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쉽게 '희생'이란 단어로 미화시키기 마련이고, 이는 현대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되어버렸다.


영화에서 주인공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차 없이 가족들을 '스킵'시켜 버린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었다.


가족... 가족... 가족...
가족이 최우선이야...


그가 갖고 있는 리모컨은 엄청난 '인공지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항상 '성공'을 위해 리모컨을 사용했고, 덕분에 그가 조종하지 않더라고 리모컨은 그를 저절로 '성공의 순간'에 데려다 놓았다. 그가 '빨리 감기'로 넘어간 시간에는 '자동 조종'가 되어 그의 행동을 '전과 다를 바 없이'행동하게 하였다. 그 결과는 꽤나 비참했다.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고, 그를 찾아온 부 또한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다른 남편이 생겼으며, 아들과는 '비즈니스 파트너'정도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는 '성공'을 위해 내달렸지만, 그 뒤에 멀어지는 가족들을 보지 못했다. 그는 결국 비참한 최후 앞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가족이 최우선이야.'라는 유언을 남기며 죽음을 맞이한다.


앞서 모티가 말했던, '착한 사람에겐 때때로 휴식이 필요한 법이야.'에서 그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삶은 성공으로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그 사이 그가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고달픔으로 가득했고, '휴식'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 마지막 순간에서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짧게 요약된 그의 삶은 제삼자가 보았을 때에는 뛰어난 능력으로 사업에 승승장구하여 위인으로 길이 남을 듯 보였지만, 그가 느낀 것은 벼랑 끝에서 간신히 부여잡은 '가족'이란 단어였다.




사실 그의 삶은 끝이 아니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리모컨을 받던 그날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리모컨'이 주어진다. 그리고 모티가 남긴 '이번엔 제대로 쓸 거라고 믿네.'라는 메모가 있었다. 그는 다시 '과거'와 '미래'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제대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리모컨을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는 더 이상 '미래'나 '과거'에 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인생을 되찾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달려가 했던 말은 '모든 게 놀라워요.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였다. 즉, 그가 살고 있는 '현재'라는 곳은 단순히 '희생'되기엔 너무나도 놀랍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한껏 느낀 그는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제 영화 밖으로 나와보자. 지금 우리는 어느 시간에 살고 있는가? '과거'만을 보며 좋았던 나날들만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미래'만을 보며 '완성'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모두 '현재'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나중을 기약하며 '현재'를 소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우리들 스스로가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현재가 고통스럽고 서둘러 벗어나고 싶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에 놓인 많은 '소중함'을 잃어버린 채 맞이한 미래는 '또 다른 고통스러운 현재'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바쁘기만 한 현실 속에서 잊고 있던 현재에 놓인 '소중함'이 놓여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가족이나, 한동안 잊고 있던 옛 친구들, 한때 도움받았던 고마운 사람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그 언제가 아닌 바로 '현재'에 놓여있다. 우리가 미래를 그리며 마냥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영화에서 그가 맞이한 '비참한 최후'가 아닌 그가 그토록 되찾고 싶어 했던 '소중함'으로 빛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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