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Sep 30. 2016

시간을 달리던 소녀의 '비상'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찾은 날아오르는 방법

시간


우리는 모두 '시간' 안에서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든 안 하든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감싸 안고 우리는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말 그대로 '살아갈'뿐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간'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때론 할 일들로 뒤덮여 컴컴하게만 느껴져 짧고도 길었던 연휴로 돌아가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깊은 상처로 남아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따금씩 생각하곤 한다.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2006년에 한 영화가 개봉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는 행운을 자부하던 한 소녀가 불운들 사이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게 되며 일어나는 사건들과 함께 17살 소녀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그 능력을 그녀는 어떻게 맞이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자.


Time waits for no one


주인공 '콘노 마코토'는 평범한 17살 소녀이다. 그녀는 특출 난 것도 엄청 못난 점도 없는 '보통의 소녀'이다. 때문에 그녀는 어디로 나아갈지 몰라하고, 수많은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름 '행운'을 자부하며 살던 그녀에게, '불행'한 날이 펼쳐진다. 그녀에게 찾아온 불행은 그녀를 단순히 운 나쁜 날이 아닌 그녀의 삶을 최악으로 치닫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최악의 순간에서 하나의 '마법'이 펼쳐진다.


'Time waits for no one' 시간은 누구 하나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은 냉정하다. 아무리 힘든 시간에 놓여있더라도, 반대로 엄청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가차 없지 태엽을 감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시간이 주는 평등함 앞에 우리는 언제나 굴복하고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원초적인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을 지불하든 언제나 시간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마코토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후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타임 리프'를 할 수 있게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거대한 무언가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삶의 조그마한 사건들을 고치고 피하는 데에만 그것을 사용한다. 그녀는 남자 주인공 '치아키'의 사랑고백도, 위험했던 순간도, 그 어떤 순간도 그녀는 '타임 리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조작하고 도망치고 회피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것에 대한 대가가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그녀의 이모 '가즈코'는 그녀에게 '네가 이득을 본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능력을 맞서 싸우기 싫어 도망치고 고치고 피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그런데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변화'와 '성장'이 아닌, '도망'과 '회피'만을 택하면서 그녀는 언제나 '그대로' 있을 수 있었다. 결국 제자리에서 머무르기만 했던 그녀는 치아키에게 화를 내며 선을 그어버리게 된다. 즉, 그녀는 '우정'을 잃기 싫어 도망친 것이 결국은 똑같이 '우정'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도망'은 결코 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떨어져 나갈 마음의 짐이 남긴 상처가 두려워, 뒷일로 미룰 뿐이다. 그것을 떼어내지 않고 억지로 계속 미루다 보면 언젠가 그것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와 마코토가 치아키에게 소리치듯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영화에서 그녀가 도망치고 피하기만 했던 행동들의 결과들은 상황을 나아지게 한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또 한 번 최악의 순간을 맞이했다. 이것은 그녀가 결국 매번 도망치기만 했던 결과이다. 그 순간 그녀는 치아키를 보았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치아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타임 리프'를 할 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그것이 가능한 시대에서 온 것이었다. 그는 과거 그려졌던 한 '그림'을 보기 위해 온 것이라고 한다. 그 그림은 전쟁 속에서 그려졌지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그림이었다. 마치 전쟁이 끝나고 다가올 평온을 담은듯한 그 그림은 하나의 '희망'과 같이 느껴졌다. 치아키의 세상은 구체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그림이 담고 있는 '희망'을 맛보기라도 하고 싶어 하던 것을 통해 상당히 우울한 모습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서로 말하고 난 뒤, 그는 그녀에게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말과 함께 작별인사를 한다.


마코토는 말한다. 그림을 어떻게든 지키도록 해보겠다고. 그녀의 그런 무겁게 전해지는 포부는 그에게서 암울한 시대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는 '희망'과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모습은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 진심이 느껴졌다. 그가 떠난 뒤 그녀의 배경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노을과 구름의 모습은, 그가 떠난 거리의 허전함을 채우며 반짝이는 별이 쏟아지길 기다리는 듯했다.




그가 미래로 간 뒤에 그녀는 성장했다. 영화 내내 피하기만 했던 그녀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그녀가 보고 있는 하늘을 향해 높게 뻣은 구름은 더 이상 그녀가 도망치지 않고 높이 날아오를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달렸던 시간들은 이미 그녀의 뒤에 놓여, 그녀를 비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시간'이란 것을 그녀는 손에 넣고 나서, 더 이상 그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했다. 그녀가 보여준 것처럼 사실 시간은 우리를 지배하지 않았다. 우리가 무한정 많은 시간 속에서도 도망치기만 하고 변화를 두려워만 한다면 그것은 곧 시간의 가치를 퇴색되게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주어진 시간 동안 끊임없이 나아가고 성장한다면 그 시간은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란 물살에 꼬리를 힘차게 치며 어딜 향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는 바로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즉,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이고, 결국 시간은 우리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녀가 힘들게 달렸던 시간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을 때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 또한 '도망'을 위해서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시간을 달린다면,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웅'이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