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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Sep 23. 2016

'영웅'이 되기까지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찾은 '영웅'이 되는 방법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웅


세상은 언제나 '영웅'을 원하고 있다. 영웅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거나 큰 힘을 발휘해 사람을 기도 하고, 때론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곤 한다. 어느 시대나 영웅을 필요로 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낸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히어로물'에서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통해, 어린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들의 '정의감'은 의심할 여지없이 위대한 것이고, 그들의 힘에 동경과 존경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꽤나 가혹하다. 영화 밖 세상에선 그 누구도 영화에서 보이는 '초능력'과 같은 초월적인 힘은 없다. 때문에 현실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희생'에 대한 위로와 숭고함의 표시로 '영웅'이란 단어로 그들을 칭송하기도 한다. 최근의 불난 원룸에서 수십 명을 구하고 끝내 숨을 거둔 20대의 성우 지망생이 그러했다. 그를 영웅이라 칭하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남아 살아갈 것이고 이런 그에게 '영웅'이란 칭호는 전혀 아깝지 않다. 아니, 아까울 수가 없다.


그리고 2016년 9월 한 명의 '살아남은 영웅'에 대한 영화가 개봉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에서는 전례 없던 수중 비상착륙을 성공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155명 전원 생존'이라는 명예스러운 단어 뒤에 그의 모습은 TV에서 보이던 흔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었다.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 분)'는 사고가 발생한 US 에어웨이즈 1549편의 기장이었다. 그는 분명 성공했고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를 향한 시선들이 모두 따뜻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엄청났던 208초의 모험담을 드높이며 '영웅'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그의 판단이 옳았는가 판단하는 '국가운수안전위원회'는 '절차'라는 뻔한 과정을 통해 그를 추궁했고 그에게 따뜻하다 못해 데일 정도의 뜨거움을 보이던 '언론'은 그는 물론 가족까지 괴롭히는 듯했다. 영화에서 보이는 세상은 그에게 '영웅'다운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을 단순한 '위험 상황'으로만 여기고, 다른 선택지들을 들이밀며 그의 '영웅'이란 칭호에 의구심을 품었다.


현실에서의 많은 의로운 일들이 이렇듯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물론 논의되어야 하는 사항들에 대해서의 활발한 대화들은 필요한 것이지만, 어떠한 일들은 도덕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특정 집단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나 자신에게 발생하는 손해를 막기 위해 그것들의 본의를 해치곤 한다. 최근 있었던 군인 장병에게 무료로 버스를 태워주었지만, '여성 혐오'라는 근거 없는 명목으로 맹비난에 이르게 하여 결국 사과문까지 쓰게 된 한 버스 기사분의 사례를 통해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설리 기장이 겪은 것도 이러한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보험사와 관련되면서 설리 기장의 행위에 잣대를 들이대고, 언론은 그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내세우며 사고가 만들어낸 트라우마 외에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일을 한 것뿐'인 그의 자세와 '40년 동안 비행기를 몰아왔지만, 208초로 판단된다.'라는 그의 말에서 그의 생각을 찾을 수 있다.



그가 한 일이라곤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그의 '신념'을 지킨 것뿐이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위풍당당한 영웅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세간의 관심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차라리 사고 전날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며, 명예를 얻었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순간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가 쌓아왔던 그 자신의 모습은 40년 동안 비행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지 '208초'의 순간이 지나서 그는 이 시대의 '영웅'과 '사기꾼' 사이에서 자신을 세간의 판단에 맡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208초라는 결과를 내기 위해 40년을 바친 것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이미 그 자체로 '결과물'이었다. 그의 회상 장면에선 옛날부터 그의 '파일럿'에 대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사히 착륙을 한 뒤에 그가 보였던 행동들, 승객들이 모두 나갔는지 확인하는 것과 전원 생존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안도하던 모습들은 그가 단순한 '비행기 기장'이 아닌 그 앞에 '신념'이라는 단어를 붙여 그의 '소명의식'을 살펴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다. 그의 '신념'에 의한 결과물들은 208초가 아닌 40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며 나타났었고, 그것 자체로 칭송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결국 세상은 '영웅'을 가만두지 않았다. 청문회를 열어 그를 향해 의심을 칼날을 내세우기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앞에 가져온 '사실'들은 설리 기장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져 있던 '허드슨 강 비상창륙'이란 선택지가 아닌 훨씬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회항'이란 선택지들을 한 번씩 시연한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성적였다. 시뮬레이션에서 회항하여 인근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였고, 이것을 통해 '국가운수안전위원회'에서는 그를 매우 불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그의 '영웅'이란 단어 뒤의 하나의 '인간'의 모습이었다. 시뮬레이션에선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한 모습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대처가 아닌 '기계적'인 대처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꾸준한 연습과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고, 그가 갖고 있었던 것은 초능력이 아닌 단지 '신념'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시뮬레이션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인적요소'라고 불리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결과를 뒤집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영웅'이란 타이틀을 단지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순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 부기장과 승객들 뉴욕 시경찰국 사람들과 해상구조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영화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내세워 그가 '영웅'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두에게 공을 돌리고 나서야 그는 '자랑스러웠다.'라고 부기장과 대화하며 한결 가벼운 모습으로 청문회를 나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직업에 '소명 의식'을 갖고 묵묵히 맡은 바를 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타이밍'을 기다리며 평가를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있는 그 자리 그대로 하나의 '신념'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신념' 하나하나는 모두 존중받고 칭송받기에 충분하다. 그것들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은 그들이 '영웅'이 될 수 없게 하는 방해물일 뿐이다.


우리 또한 영화에서 설리 기장이 보여줬던 것처럼 하나의 '신념'을 가슴에 품어보도록 하자. 이것은 엄청난 능력이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면, 우리 또한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한 명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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