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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Dec 16. 2016

그들의 에필로그

영화 '라라 랜드'의 여운에 대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끝이 나고, 서로를 향한 미소만이 진한 잔상으로 남았다. 이후 영화관 밖을 나온 나는 바쁜 일상에 맞춰 몸을 움직였지만, 내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선 끊임없이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목소리는 음악에 담겨 여기저기 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있었고, 나의 욕심은 직접 노래를 찾아 듣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내 일상에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녹아들어, 영화 속 한 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 듯했다. 


그렇게 노래는 아쉬운 마음을 채워주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따라 플레이 리스트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때 느꼈던 그 순간 속에 또 한 번 걷잡을 수 없이 휩싸였다. 감정에 떠밀려 확인한 핸드폰 화면에 보였던 노래의 제목은 'Epilogue'. 그들의 마지막 장면은 단어 그대로 '후일담'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이별의 순간'을 그려내지 않았다. 수많은 영화가 애달픈 이별의 장면들을 명장면으로 내세우곤 했다는 점에서,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의 공백은 허전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화가 보이지 않은 이별의 장면들을 그려내는데 어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비어진 부분은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로 채워 넣어도, 아니 오히려 영화는 그 부분만큼은 관객의 몫으로 돌리려 한 듯싶었다. 누구나에게 있기 마련인 이별은 누구나에게 있기 때문에 '흔한 것'이 아닌, 오히려 누구나에게 마음 한편에서 자신들만의 색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놓인 그 단어가 영화의 한 부분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미 엠마의 결혼생활의 모습이 보일 때 그들의 로맨스는 끝난 것이었다.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그것도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던 그 모습은 세드 앤딩 '로맨스 영화'의 전형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머릿속으로만 그려보고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동안 관객의 몫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만약에'라는 마법을 걸어주었다.


이별이 괴로운 이유는 머릿속에 잔존하는 추억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현실 사이 괴리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럴 때 '만약'이라는 조건을 걸어주어 후회라는 마침표를 쉼표로 바꾸게 하여, 그 이후를 마음껏 그려보곤 한다. 그 가정은 괴로울수록 더욱 진한 색을 내어 생생하게 우리를 다시금 사랑 속에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마주하는 더 커져버린 이질감은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져 결혼을 하게 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될' 그들의 모습을 영화에 당당히 드러내면서, '이런 장면이 보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하던 관객들의 아쉬움을 해소시켜주기는커녕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내어 이별의 씁쓸한 맛을 깊게 우려냈다. 


후에 영화 OST를 들을 때, 이러한 장치는 큰 효과를 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쓰인 'Epilogue'의 노래를 들으면, 그들의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하지만 곧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마치 우리가 이별을 직접 맞이한 것처럼 마음을 아려오게 한다. 그것은 여느 새드 앤딩의 로맨스 영화와는 다른 '라라 랜드'만의 특별한 여운이다. 더욱 깊고, 더욱 선명하고, 더욱 아프다. 우리 속에 깔끔하게 씻겨내 지지 않은 그 맛은 텁텁함이 아닌 몇 번이고 맛보고 싶은 감칠맛이었다.


때문에 나는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다시금 영화 '라라 랜드'에 대해 생각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후일담은 그들의 짧고도 길었던 사랑이란 역사에 '만약에'라는 마법을 걸어, '끝'이 아닌 '연장선'이 되어 그들의 마음속에서 새어 나와 기분 좋은 색으로 남았다는 것을 영화 마지막 서로에 대한 미소에서 엿볼 수 있었다. '라라 랜드'에서의 그들의 사랑은 언젠가 불현듯 새어 나와 그들의 삶에,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어 진한 향기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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