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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Mar 02. 2017

세 소녀의 이야기

영화 '눈길'에서 찾은 온정이란 따스함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는 갇힌 시선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간다. 그 가운데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 같은 특정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 놓여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밖의 타인들도 존재한다.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그 공동체 외의 사람들 가운데 기억나는 사람이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시선의 범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수많았던 사람들 가운데 타인의 얼굴이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바쁜 일상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 갇힌 시선은 차마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소외를 발생시킨다.


자신의 것을 찾기에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은 욕심 아닌 욕심으로 보일 것이다. 과거 사람들 간의 유대를 형성하던 '온정'이란 요소는 현대사회의 차가운 바람에 식어버려, 단순히 TV 또는 영화에서나 과거를 그리워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 서글픈 점은 이러한 상황은 분명 방향을 바꾸어 고쳐나가야 하지만, 누구 하나 반박하지 않고 그 상황들을 이해해주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차가운 현실이 시선을 거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다. '이나정'감독의 영화 '눈길'에서는 역사라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모습이 흐릿해져 가는 한 '소녀'와, 세상에 상처를 받아 가시를 가득 세운 또 한 명의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잊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내몰려진 세상의 끄트머리 언저리에 놓여, 계절이 품은 시린 바람을 매섭게 맞이하고 있었다.


 

둘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다른 시대에서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았지만, 분명 그들의 삶은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그들은 너무나도 여리고 부드러웠다. 때문에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도 모른 채, 자신이 상처 입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종분(김영옥, 김향기 분)'과 '은수(조수향 분)'의 양쪽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종분은 어릴 적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시대에 자신의 어린날들을 희생당한다. 은수는 한창 뛰어놀고 앞날을 꿈꿔야 할 고등학생의 신분이지만 그의 부모님은 은수를 버리다시피 하였고, 결국 그 어린 나이에 '돈'이 목적이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대가 앗아간 그들의 청춘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당장의 우리들의 삶을 보더라도 누구 하나 청춘이라는 것을 설레 하지 않는다. 걱정과 고민들로 채워나가는 것이 현대의 청춘의 모습이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묘사된 청춘이란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뭐든지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포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되었다. 그들의 대답에는 철저히 '설렘'이 제외되어 있었다. 혹자들은 그들이 철이 드는 과정이라며,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물론 책임감이란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성장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포기하는 대상에 해당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요소인 사랑을 비롯한 여러 감정들과, 연인 또는 친구들과 같은 기본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관계와 같은 것들이 포함되는 것은 '어른'이 돼가는 것이 아닌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과정과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은 철저히 격리되기 마련이다. 영화 속 현대의 종분과 은수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시대가 빼앗아간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찾고 싶어 했다. 한 명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사람들 사이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세상에 버림받았다 생각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잔뜩 가시를 세운 모습이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고독함과 적대심은 낯선 감정들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삭막한 세상에 대한 경계는 앞서 설명한 감정들과 색을 달리하지 않는다. 영화는 외면이 기본 소양이 된 이 세상에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은수가 대하는 종분은 어릴 적 영애(김새론 분)가 그랬던 것 같이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 속 타인을 보는 시선과 같이 그들도 그러했다. 모진 세상은 그들의 삶을 끝맺게 하려고 했고, 누구 하나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원망하며 본인 스스로가 그 끝을 원하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종분은 그러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감히 손을 내밀었다. 자신에 손에도 가득 상처를 품었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 한 번에 행복에 휩싸이는 그 여린 소녀가 누구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자신을 밀어내는 그들을 향해 끝까지 손을 내밀고 발을 맞추어 나란히 서기를 원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산과정을 들이밀고,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쉽게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현대의 모습에선 하기 힘든 행동이다. 누군가 그녀의 온정을 물질적인 이익과 손실의 과정만으로 환산해 들이민다면, 그 종이엔 당당히 마이너스 값이 찍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분은 그녀의 작은 손에 그들의 손을 포개어 잡을 것이다. 차가운 세상에서 그 따스함은 단순한 돈 따위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내내 말해준다.




그들이 걸었던 눈길은 차가웠지만, 종분은 자신의 온정으로 목화솜처럼 따뜻하게 그 길을 꾸몄다. 하지만 종분이 힘들게 헤쳐 나와 도착한 곳은 여전히 차가운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종분은 포기 않고 갈길 잃은 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온정을 느낀 은수에게는 새로운 삶이 펼쳐졌고, 불안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의 삶에 설렘과 꿈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녀가 품은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바로 그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차가운 눈길 위에서 발자국을 남기지만,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주저앉아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가 세상을 향해 벽을 쳐 눈길 가운데에 외로이 남겨진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 종분이 보여준 따스한 온정이 가져다주는 힘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해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잊지 않고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타인과 나란히 서기를 추구한다면, 눈길은 녹아 꽃을 피워내고 우리들의 삶은 꽃들이 풍기는 향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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