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Feb 22. 2017

그와 '그녀'의 사랑, 그리고 인간의 조건

영화 '그녀(Her)'에서 찾은 '감정'이란 요소

우리들의 삶은 고독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현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분명 예전보다 쉽고 빠르게 다른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서로 간의 대화는 더욱 줄어들어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대화를 대신하게 된 듯싶다. 때문에 고독한 현대인은 일반적인 상황이 되어버렸고 더불어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은 혼밥, 혼술과 같은 단어로 알 수 있듯이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세상을 혼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 관계를 언제나 요구하기 마련이고,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진 틀 안에서 유지된다. 이러한 관계의 끈을 배제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인간의 삶보다는 기계의 삶에 가까워지게 되고, 그 누구도 이러한 인생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과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동시에 사람들은 긴밀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아날로그적인 인간관계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 상상력을 더한 영화가 있다. '스파이크 존즈'감독의 '그녀(Her)'에서는 과학이 발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남자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의 '그녀'를 만나 외로움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영화 속 그녀를 만나기 전의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 밖 현대인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누구십니까? 무엇이 될 수 있죠?
어디로 향하십니까? 거기엔 뭐가 있나요?
가능성은 어떤가요?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손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다. 그는 온갖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담아내어 타인의 편지를 써주는 것과는 반대로, 본인은 부인과 1년 전부터 별거 생활을 하며 하루의 가장 긴 대화 상대는 컴퓨터일 뿐인 외로움을 안고 지내고 있었다. 그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은 전화기 건너의 여성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상한 성적 취향의 사람이었고, 그는 그러한 일회성의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그의 삶은 얼핏 보면 효율적인 삶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지속적인 관계를 포기했을 때 지출은 적어지고 시간은 많아진다. 감정의 소모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신경 쓸 범위가 좁아짐에 따라 스트레스도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영화에서는 길을 가는 테오도르에게 '누구인지, 무엇이 될 것인지, 어디로 향하는지, 그곳에 무엇이 놓였는지, 그리고 가능성은 어떠한지'의 불안 요소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을 고민들이며, 누군가에겐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놓여있을 질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어딘가 의지할 곳을 찾는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듯싶지만, 그 어떠한 벽도 초월해서 강한 결속을 맺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강함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명이 아닌 둘이 되면서, 서로가 맞이할 불안요소의 해결점의 방향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은 서로를 향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이룰 수 있다. 때문에 서로를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이가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불안요소들을 떨쳐 낼 수 없기에, 이상적인 인간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에선 그 대상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가진 운영체제에 역할을 부여했다. 계산기에서 시작 발전의 궁극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이 운영체제는 신속과 정확을 앞세워 그 무엇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와 만나면서 느낀 처음도 안정감이었다. 때문에 처음에 그는 그녀를 쉽게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정리되지 않은 방과는 대조적으로 이메일부터 함께 정리하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이미 다 느꼈지 싶어.
그럼 새로운 느낌 없이 덤덤히 사는 거지


그는 그녀와 빠른 속도로 가까워져 갔다. 그녀의 인공지능은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것의 결과가 출력되는 것이 아닌, 그와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고 점점 진화를 해나가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지만, 인모습과 다르지 않은 듯 보다.


우리들 또한 경험이라는 것을 통해 발전해나가고 진화하기 마련이다. 작은 사건에 의한 생각의 변화는 항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에 사만다를 만나면서 감탄한 인공지능의 놀라운 기술을 우리 인간도 갖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의 사고의 틀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어릴 때부터 갖고 온 지식과 경험은 그대로 가치관이 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인간 개인의 시스템은 누군가에겐 올곧은 마음을 유지시켜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고쳐야 하는 단점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결국 어떠한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인간은 똑같은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곧 무딘 감정으로 이어지곤 한다. 영화에서 테오도르는 자신의 변화가 끝난 시점에서 모든 감정들은 되풀이되는 것일 뿐, 어떠한 발전도 새로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더라도 어떠한 설렘도 없이, 알고 있는 일들 사이에서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곧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인 된다. 이것은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변화는 없을 것이다. 삶을 꾸며주는 요소들을 포기해야 생존이 가능한 우리 사회에서, 풍부한 감정을 갖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영화 속에서의 테도르의 대사는 사회 부적응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많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말이 되었다.


영화는 이러한 무색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이란 게 원래 좀 그래.
뭐랄까, 공공연히 허락된 미친 짓이거든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물론 그 감정을 그 스스로가 이해하는 것도 힘든 일이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언제나 가짜 사랑을 노래하며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필해주던 그가, 진짜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설렘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그것은 무엇보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있는 그에게 그의 친구는 '사랑은 공공연히 허락된 미친 짓'이라며, 그의 마음을 옹호한다. 사랑은 이렇듯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 어떤 미친 짓이라도 사랑이 가미된다면 한없이 로맨틱한 장면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카메라가 달린 기계를 들고 달콤한 말을 하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친구들과 더블데이트를 하면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들에 녹아있는 그의 미소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사랑이란 것이 힘을 발휘한 결과이다. 이렇듯 사랑은 상황의 수용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사랑이란 것은 언제나 비효율성을 동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잠깐 보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가기도 하며, 만원짜리 몇 장이면 살 수 있는 목도리를 며칠 밤을 새우며 정성스레 짜기도 하는 것들은 일의 효율성을 적용해본다면 최악의 값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사랑에 있어서 비효율적일수록 로맨틱하다고 여겨지곤 한다. 때문에 사랑은 온전한 계산과정을 벗어나게 하여, 언제나 변수들을 만들어 내곤 한다. 덕분에 틀에 갇혀있다고 여겨지는 삶의 모습은 사랑에 의해 다양성을 지닐 수 있게 되고, 훨씬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의 많은 이들이 여러 조건을 붙여가며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여러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내내 하나의 질문에 답을 내리고 싶어 한다. '그녀는 과연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은 물질적인 것을 떠나 그녀가 느낀 것이 진실된 감정이었는지, 그리고 테오도르가 느낀 그녀가 실존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는 언제나 가짜 감정으로 대필을 해주었던 편지들이 다른 사람들의 진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인정받아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앞선 질문에 대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질문은 다시 위치를 바꿔 우리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감정과 싸우며, 존재 여부를 논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이것은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인간인 테오도르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현실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영화 속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보여준 그녀와 현실을 바쁘게 살고만있는 우리들 가운데 누가 더 인간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을 정하기 힘들것이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순히 결혼과 출산과 같은 형식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가운데 감정을 담아 사랑과 낭만을 꿈꾸고, 삶에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품고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만으로도 감정이란 다채로운 색을 만들어내어 무미건조한 삶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었다.


우리들은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몸을 갖고 있고, 그가 그녀에게서 찾고 싶어 하던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토대이며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또한 그들이 끊임없이 갈구했던 감정이란 요소를 일깨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정한 인간 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라는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