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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Sep 04. 2017

시끄러웠고, 항상 기름냄새가 났지

영화 '우리의 20세기'를 보고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20세기는 어땠나요?


 아들이 질문을 해왔다. 남자는 자신의 턱수염을 어설프게 한번 쓰다듬은 뒤에 입을 연다.


 시끄러웠고, 항상 기름 냄새가 났지


 그래, 그것이 대답이 될 것이었다. 마치 마트 주차장에서 폭발해버린 오래된 자동차를 회상하듯이, 그 시절을 같은 모습으로 그려낼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피어나는 20세기의 기억들은 조금 색이 바랬는지는 몰라도, 흔적만은 그날의 폭발처럼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든 한 명 한 명씩 머릿속에 불러내 자신의 추억을 맞춰 나갈 것이었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우리의 20세기'에서는 그 추억 속 한쪽에 자리를 마련해놓고는 우리를 초대한다.

 


 인간은 한 '조각'과 같다. 인생이란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한 조각. 하지만 빈 곳을 자기 자신만으로 채우기엔 너무나도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넓고 광활하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조각을 받아들여 서로의 부족한 공백을 메꾸곤 한다. 그것이 곧 '성장'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한구석에 잘못된 모양의 조각을 넣는다면 분명 망가진 그림이 될 것이었고, 어쩌면 자신의 그림의 화풍 자체를 바꿔버릴 만한 거대한 조각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때문에 도로시(아네트 베닝 분)는 걱정이었다. 자신의 아들인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먼 분)에게 자신의 조각만으론 채워주지 못하는 곳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도로시는 자신의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아티스트 아비(그레타 거위 분)와 제이미의 어릴 적 소꿉친구인 줄리(엘르 페닝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도로시는 제이미의 빈 공간을 그녀들이 채워줄 것이라 생각했다. 제이미의 그림을 완성시킬 목적으로 그녀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 서로는 맞지 않는 조각이었다.


 애초에 사람이란 존재는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것이란 이상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상대방의 모난 부분에 자신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억지로 상대방에게 맞추려 하다가 스스로를 망가뜨려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조각을 받아들이기도 자신의 조각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상대방의 위치를 정하는 것은 어쩌면 작은 도박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해놓은 상대방의 모양이 전혀 다를 수도, 어쩌면 아예 그 모습을 거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도로시의 부탁이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마모되는 서로 어긋난 부분과 묻어버린 진심이 있고 낯선 모습에 입가에서 망설이는 단어가 그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했다.



 집과 고향이란 공간은 사람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돌아올 곳, 휴식과 여유가 있는 곳. 어쩌면 안식처. 이러한 집이 갖는 의미는 정적인 속성 속에 안정을 집어넣은 듯한 모습이다. 때문에 한지붕 아래서 타인과 공유되는 사적인 공간은 쉽사리 지지 않기 마련이다. 자신의 안정된 것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타인의 것도 그대로 존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의 상태는 관계의 발전을 막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차를 타고 타지로 향하곤 했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이 살던 세계의 룰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지금껏 안정된 것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참아왔던 자신의 속내를 마음껏 내비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그들이 타고 가는 자동차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아우라가 마치 그들을 집과 고향 밖으로 내던지는 것만 같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 미지의 세계에서 배운 단어들을 가슴팍에 끌어안고 와서는 서로에게 풀어내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단어들을 통해 경계를 확고히 하면서도 모양만은 부드럽게 바꾼다.


 이 과정이 때론 부모의 마음으론 두렵기도 할 것이다. 단단한 유착관계에서 벗어난 한 명의 개인으로의 탄생은 인정과 붕괴의 연속이다. 그의 행동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뎌 잔돌을 밟아 아파하는 것을 볼 때면 다시금 자신이 다져놓은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반복된다. 인정과 붕괴는 제이미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인정과 타인과의 관계 사이에서 생긴 상처로 생기는 기존 세상의 붕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 있어서도 개인으로서의 인정과 '집'이란 공간 안에 그의 자리를 형성하면서 생기는 소유의 붕괴를 맛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서로의 조각들은 서로를 조각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조각으로 남았다. 각자의 조각으로 제이미를 완벽한 그림으로 만들어주길 바랬던 도로시가 완성한 것은 자기 자신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완벽한 맞물림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조금은 어긋난 채로 남은 서툰 인생과, 뱉어낸 진심으로 빈 곳을 채워 넣어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또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기에 언제든 다른 조각들로 자신의 삶을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제야 회상을 멈추곤 입을 열 것이다. 순탄치만은 않은 20세기였다. 상처받기도 어쩌면 상처 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를 잃기도 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기름 냄새로 가득하다. 차가 마트 주차장에서 폭발했던 그날 어머니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록 시끄럽고 기름 냄새뿐이었던 그 차는 정말 아름다웠다고 했던 그 어머니의 말을. 조각뿐인 그 세상 속에서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이 가득 담긴, 그리움이란 향수를 그 또한 같은 말로 회상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의 20세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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