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Oct 13. 2017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천재

'아이 앰 히스 레저'를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천재 문학가 이상의 소설 '날개'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 하나로 시작하는 소설은, 차곡차곡 단어들을 쌓아 올려 결말에 다다른 것이 아닌 무수하게 쏟아낸 단어 무더기 사이로 독자들을 던져 툭하고 놓은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단단히 매료되었기에, 그 아수라장 속을 지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난자하더라도 다음 문장을 놓지 못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천재'라는 단어 하나가 그토록 달콤했다. 미연의 경외심과 약간의 질투, 어쩌면 단명(短命)까지.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단어에 대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그 단어를 자신의 수식어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에 바닥 끝까지 절망하다가도, 두세 번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 당연하여 치기 어린 투정 정도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천재는 사랑받는다. 누군가의 환상 속 본인 스스로에 대입하던 동경의 모습이거나, 감탄의 연속으로 해소되는 감정의 얽매임이나, 천재임을 증명하듯 바삐 떠나가버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의 모습으로. 그렇게 그들은 두 발이 더 이상 땅바닥 위에 놓여 있지 않음에도, 그리워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숨을 이어가고 있다.


 히스 레저(Heath Ledger)도 그중 하나다.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에는 그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끝이 정해진 여정이지만, 그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 사람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형상은 희미해지지만 잔향은 짙어만 가는. 때문에 이쯤이면 되겠다 싶을 때에도 그동안 되뇌었던 단어들이 서둘러 나오다 목구멍을 꽉 막고, 급하게 다시금 숨을 집어삼키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히스 레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에너지를 공유하고, 상대방은 그와 나눈 대화 한마디가 자신의 삶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여릿한 공포와 기대가 다시금 강한 결속을 불러일으켜 다시금 그를 찾게 된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하게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정말이지 그 모든 것들을 단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나하나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의 청춘을 완성하고, 그를 떠나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삶은 '영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기록했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과 자신이 보는 모든 것들을 담아냈다. 그의 행동과 표정과 시선과 생각까지, '히스 레저' 자신이 그곳에 올곧이 담겨 있었다. 매 순간마다 카메라 앞에 놓인 주인공이 되어 현재를 충실히 살아갔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일상조차 그의 카메라 안에선 히스 레저 본인의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 그 역할을 소화해냈다. 그가 찍어 놓은 영상들 하나하나에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세상의 속도에 휩싸이지 않는 여유와, 그리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열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삶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출연했던 영화 하나하나가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 매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있다. 그에게서 '배우'라는 직업은 소모적이지 않았다. 단순히 출연료를 받고 그에 합당한 연기를 해주는 것이 아닌, 매 영화가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고등학생 남자아이는 어느새 중세 시대의 기사가 되어있었고, 그러다 미국을 대표하는 남성성에 자신의 색을 한껏 입혀 표현한 게이 카우보이가 그리고 영화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악당인 조커까지. 그가 맡았던 역할들 하나하나가 모두 '히스 레저의'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본인의 개성을 녹여냈으면서도, 한 가지의 모습으로 정형화할 수 없는 그래서 그가 맡았던 모든 배역이 뻔하지 않고 기대가 되는 그런 배우였다. 그는 배역 하나하나에 자기 자신을 혼연일체 시켰고, 때문에 그의 배역을 이어 붙인다면 다시 그것이 '히스 레저'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마지막 이유는, 그가 보여준 삶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히스 레저를 추억하는 사람들 모두 단지 그가 단순히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하기보단, 히스 레저 덕분에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만큼 히스 레저는 자기 주변의 사람에게도 영향력이 커다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에 대한 일화들 하나하나는 그를 보여줌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적응해 버린 정형화된 삶에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마치 자신의 끝을 알고, 이렇게 영화로 자신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을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단순한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닌, 정말이지 잘 짜인 각본대로 살아간 한 사람의 픽션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죽음이 히스 레저를 좋아한 많은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상투적이게, '천재라는 이름에 가려져있던 인간적인 히스 레저의 모습을 보았다'라고 쓰려고 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가 천재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누구라도 그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갈 줄 알았던 '천재'였다. 우리들 누군가의 가슴속 깊은 곳에 언제나 뜨겁게 자리한 그 꿈을 향한 열정을 그는 부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들 누구나 마음속 한구석에 히스 레저를 품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과거에 후회 따위를 남기지 않고, 당연하게도 끝이 있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대는 현재에 갇힌 무한한 힘을 가진 생명력이 우리 안에 있다. 그 히스 레저에게 히스 레저는 영화 내내 끊임없이 말한다. 마치 그가 못다한 그것을 대신하듯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참으로 영악한 영화, '어 퍼펙트 데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