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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Nov 02. 2017

한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

영화 '리빙 보이 인 뉴욕'을 보고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예술과 돈의 싸움에서 돈이 이겼다.


 불행이었다. 어쩌면 세상의 이치라고 혹자는 말다. 뉴욕이란 도시의 색은 그렇게 탈색되어 갔다. 꿈과 만을 꽃피우던 예술가들은 하나둘씩 펜과 붓을 꺾고, 지폐를 세며 더욱 높은 빌딩 위 한편에서 앉아있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겼다. 거리에 묻은 페인트는 닦아내야 할 골칫거리가 되었고, 길거리에서 울려퍼지던 노랫소리는 소음이 되었다. 결국 초록색 다발과 숫자만이 유효한 의미를 갖는 높다란 콘크리트 숲만이 그곳에 남았다.

 

 도로는 많아졌지만 길의 갈래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불행히도 이 세계가 정당성을 얻기에 필요한 핑곗거리는 많다. 그럴듯하게 자본주의의 결말이라든지, 철이 안 들어서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라든지 어떠한 말로든 잿빛 도시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시에서 '스토리'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 것이라고 '토마스(칼럼 터너 분)'는 생각했다. '마크 웹' 감독의 <리빙 보이 인 뉴욕(원제 :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식상해진 삶의 방식의 길을 따라가던 토마스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가족,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토마스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의 단조로운 일상은 차분한 도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이것은 비극이었다. 발을 내딛는 곳은 잘 포장된 도로였기에, 뻔한 앞길에 안도하면서 발을 마음껏 뻗을 수 있었음에도 어쩐지 그는 망설이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는 필사적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마음을 내보이기도,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여러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미 멀리 와버린 뉴욕과 예술의 거리감은 그를 더욱 제자리에 머물게 했다. 필사적였지만 단조로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비극이었다.


 어쩌면 불행히도 그의 삶은 비극조차도 되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지루한 인생을 떠올려보자면, 평범하게 일을 하다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여생을 마무리하다 평범하게 죽는 평범함 그 자체의 삶이 지루하다고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이것은 21세기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토마스 또한 21세기의 젊은이였다. '청년'이란 단어의 푸른색이 무색할 만큼이나 색이 없는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공감이 됐나 보다. 분명 길을 걷고 있지만 방황과 다르지 않았다. 목표는 있지만 꿈은 없다. 어쩌면 꿈을 꾸었다가도, 현실에서 그 형상을 다시금 떠올렸을 때 무너지는 자신의 이상을 버틸 수 없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토마스도 그러했다. 가난한 예술가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 아버지 앞에서 토마스는 마땅한 단어를 고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굴 뿐이다. 그래도 그에게 색은 없었지만 '빛'은 있었다. 빛은 막아도 손 틈새로 들어오기에 그는 더욱 온몸으로 그것을 맞이 할 수 있었다. 그 빛의 이름은 '사랑'이었다.



 그는 '미미(키어시 클레몬스 분)'에게 사랑을 물었다. 그러자 미미는 다시 토마스에게 사랑을 되물었다. 사랑은 사사로운 감정에서 출발해, 깊은 고뇌로 끝을 맺곤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완벽한 사랑을 생각할 수 없다. 그 가운데 '경험'이란 과정에 토마스는 놓여있었다. 그것이 그의 삶에 유일한 변수였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때문에 토마스가 아버지의 내연녀 '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 분)'를 만났을 때에, 그의 삶에 결여된 스릴을 느꼈던 것이다.


 사랑은 소모를 불러일으킨다. 단순한 물질적인 소모 말고도, 감정의 소모가 사랑 사이에 존재한다. 때문에 한 명만이 사랑을 길게 잇는다면, 금방이고 감정은 바닥을 보이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사랑이 헌신적인 사랑이라면서 애써 로맨틱하게 포장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 놓인 사랑은 그렇게 둥글둥글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보통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사랑을 택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랑을 그려내 가슴 깊이 달콤한 진동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가지 모두를 영화 한 편에 담았다.


 토마스는 감정을 계속해서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순수함의 죗값이고 뉴욕이란 도시에선 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소모를 최소화하기를 택한다. 색채를 잃은 세상에서의 소모는 단순한 손해만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멈추지 않았다. 끝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눈 앞에 놓인 것들에 대한 충만한 마음에 그대로 따랐고, 그것이 이 지지부진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랑을 통한 타인과의 이해와 공감이라는 정석의 주제를 보여주면서도, 마크 웹 감독은 불문율의 위배 가득한 위험한 모험을 이 영화 안에 담았다. 할리우드식 막장 드라마는 마크 웹 감독에 의해서 뉴욕의 스토리가 되었다. 영화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음속 가득 담고 나온 훈훈함은 우리가 이 도시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삶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주인공으로서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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