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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Dec 14. 2017

강철비, 그 무거운 날씨

영화 '강철비'를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봄직한 판타지였다.


 남한과 북한. 반세기 넘게 이어온 불편한 동거 속에서 불안과 평안이 혼재된 사회가 우리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우라지만, 막상 일상에선 체감하기 힘든 그런 현실이다. 때문에 간간히 들리는 뉴스가 남북 분단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대신 분단국가라는 특수 상황은 여러 대중 매체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서로 선을 긋고 단단히 등을 돌리고 있지만, 여전히 한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주시하고 있는 이중적인 상황은 이야기의 좋은 소재가 된다.


 그동안 남북한 상황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가진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다. 6.25 전쟁으로 갈라진 형제라던지, 북한 간첩의 한국 살이, 또는 그 간첩과 협력하면서 작전을 수행하기도 하는. 양우석 감독의 영화 '강철비'도 그중 하나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국내외 정치가 작품의 스토리 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고, 많은 뒷 이야기를 낳을 수도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분명한 '판타지'다. 하지만 단순한 판타지로 소화시키기엔 영화의 메시지는 무겁다. '만약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한 상상이 영화의 배경이 되어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던진다.



북한의 넘버 원


 북한의 넘버원을 남한으로 데려온다는 것이 이 영화의 시작점이다. 북한은 3대째 세습정치를 해왔으며, 그는 북한의 최고 권위자로 북한의 행보에 제일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말 그대로 '넘버 원'이다. 남북 관계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여겨지며, 대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북한의 넘버 원이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하면, 어쩌면 당연하게도 칼자루를 우리 손에 쥐었다고 생각되어 '유리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의외의 현실은 그가 나름의 억제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남북 분단과 여러 불안 요소를 제공하는 원흉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급진적인 행동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에서의 역할은 최후의 적보다는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애물단지의 것과 가깝다. 


 또한, 등장하는 북한 쪽 인물들이 북한의 넘버 원에 대해서 광적인 신봉을 보이는 것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정치적, 사상적으로 남북한의 멀어진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영화에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날 선 대화도 오가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어느 정도 그러한 사상적인 부분을 인정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착화된 북의 정치 구조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것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영화는 그들을 이해하거나 인정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생가해야 되는 다른 주변 국가들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더욱 큰 문제점으로 제시한다.



분단의 고통


 남북한의 분단은 단순히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후기 격인 군정기의 끝이 남북한 서로의 손끝이 아닌, 다른 국가들이 앞장서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방아쇠의 주인은 당사 국가가 아니었다. 또한, 그것의 연장선으로 현재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서로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된 것이 현실이다. 물론 현재의 한미 동맹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길고도 긴 분단의 역사 시작점에서 비롯한 안타까움의 토로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조금 더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의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


 이 문장이 향한 곳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이것은 현실태이자 날카로운 일침이다. 때문인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 남북한을 대표하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마치 그러지 못했던 70여 년 전의 주체성의 결여를 안타까워하듯이 주변 국가들은 철저히 경계선 밖에 두고,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 의지한 채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을 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최악의 상황이자 최고의 상황을 함께 담아내고 있기에, 영화라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과 영화라서 아쉽다는 탄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정치색을 입혀서 본다면, 한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대북 정책은 그간 국내의 정치 상황에서 가장 크다고도 할 수 있는 주류의 논쟁거리였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현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위자의 의견 충돌은 내용이 전개될수록 한 점으로 모이게 된다. 그 끝에는 '역사'라는 것이 놓여있었다. 영화는 한쪽의 선택지에 손을 들어주는 과감함을 보인다. 


 분단국가가 남북한의 영원한 수식어로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섣불리 서두르는 것 또한 정답은 아니다. 영화는 역사 속에 깃든 '한민족'이라는 가장 큰 배경을 보여준다.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기엔 현실적인 벽과 주변의 날 선 시선이 많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한없이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영화 제목의 '강철비'는 이처럼 현재의 무거운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언젠가 비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뜬 하늘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강철비가 그친 그 맑은 하늘을 맞이 할 수 있는지 고민을 던져준 영화 '강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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