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어릴 적 보았던 TV 만화의 에피소드가 있다. 악당이 있었고 주인공이 있었다. 악당은 사람들의 겉모습을 괴물로 바꾸는 저주를 걸려고 하였고, 그렇게 괴물의 겉모습이 된 사람들이 나중엔 내적으로도 괴물로 변할 것이라는 장대한 계획을 꿈꾸고 있었다. 물론 주인공 일행이 막아냈기에 악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어릴 적 보았던 악당의 계획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동시에 이유모를 엷은 불쾌감도 느껴졌는데, 그것이 섬뜩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지금은 여러 방법으로 겉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살을 빼거나, 성형 수술을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신체의 특정 부위만을 바꾸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타인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상상하였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이것은 다양한 작품 속에서 매우 흥미로운 소재가 되었다. 전혀 다른 타인이 된다는 것. 분명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일이면서도 나는 분명 그것에 대해서 미연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 공포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중에, <블랙 미러> 시즌 5, 에피소드 1에 해당되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작품을 만났다.
'대니(앤서니 마키 분)'와 '칼(야이 하 압둘 마틴 2세 분)'은 절친한 친구로, 과거 함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라는 이름의 격투 게임을 즐기며 추억을 함께 나누었다. 시간이 흘러 대니는 결혼을 하였고, 칼은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와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사랑이란 이름으로 맺어졌던 부부의 인연은 부부의 '정' 정도로 미적지근해진 대니가 있었고, 여자 친구와 진실된 마음이 통하지 못하고 무게감 없는 연애를 지속할 뿐인 칼이 있었다.
공허함이란 단어는 단순히 비어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채우지 못한 어딘가 결여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커다란 구멍이 자신의 삶 속에 몸을 불리며 점점 커져가는 느낌으로 존재한다. 긴밀하게 맺어진 관계 사이에서도 공허함은 찾아오곤 한다. 부부 사이나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공허함의 완벽한 대체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사랑이 가져다주는 공허함은 색이 짙어, 외로움과 고독의 색으로 묻어 나오기도 한다. 색으로 비유하자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 청아함과 상쾌함을 잃어버린 짙은 푸른빛으로 바다에 생긴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구멍과도 같다. 부유를 바라고 뛰어든다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대니와 칼은 그렇게 공허함 속에서 오랜만에 재회했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반가움에 인사를 나눴고, 칼은 대니에게 과거 함께 즐겼던 격투 게임인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최신판을 선물해준다. 이전에 커다란 화면에서 게임기를 두 손으로 쥐며 즐겼던 게임과는 다르게, 이 최신작은 관자놀이에 장치를 붙이면 모든 감각이 그대로 가상공간 속에서 실현이 가능하여 현실과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완전한 타인'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니와 칼은 예전에 자신들이 조종했던 캐릭터가 되어 게임 속 세상에서 만나게 되었다. 대니는 동양인의 남자 캐릭터로, 칼은 금발의 여자 캐릭터가 되어 실제와 같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만났다.
가상세계에 들어가면 현실과는 완전히 단절된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현실에 남겨진 육체는 마치 죽은듯한 모습으로, 눈은 빛을 잃고 몸은 생명력이 다 빠져 늘어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니와 칼은 물론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남자와 남자로, 오랜 친구사이로, 각각 대니와 칼로. 하지만 완벽하게 구현된 가상공간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서로는, 전과 다른 마음을 품게 된다. 몇 번의 전투 테스트 끝에 그들은 격정적인 키스를 한 뒤, 혼란을 안은 채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다른 작품들에서 타인이 되었을 때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킨다든지 원래의 몸에 위기가 생긴다든지 하는 긴장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로지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는 데서 나온 근본적인 두려움이 작품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물론 사람이라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재되어 있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내적 자아의 실현은 발전적이고 성장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자아는, 갑작스러우면서도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새로운 자아에 대한 순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현실과 완전히 격리된 가상공간에서의 사랑을 마음껏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단어 그대로 가상의 공간 속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곧 현실과의 괴리를 일으켰다.
칼은 어느 순간 사랑을 고백했다. 게임 속 여성의 모습으로 대니에게 짧고도 애틋한 문장을 쏟아냈다. 그동안 선을 잘 지켜온 둘이었다. 하지만 칼이 사랑의 말을 내뱉은 순간 지켜왔던 경계는 무너져 내렸다. 단순한 놀이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변모되었고, 발생한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성 정체성의 혼란, 대니의 외도, 어쩌면 오랜 친구 관계가 무너진 탓인지. 애초에 가상공간에서 행해졌던 일들을 현실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인지까지. 이야기를 보는 우리들은 단순히 그들의 입장을 제삼자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같은 혼란을 느끼며 여린 불쾌감을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 내게 이 이야기가 해피 엔딩인지 배드 엔딩인지 묻는다면, 나는 섣불리 답해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듯한 후련한 표정들을 짓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와 처럼 마치 동화 같은 결말을 그려낸 듯싶지만, 유쾌하지 않은 여운과 여러 생각거리 또한 많이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서 시작하여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질문들이 나올 것이다. 그것에 대해 여러 대답들이 나올 수 있어도 정확한 정답은 없다.
나는 다시 어릴 적 악당의 계획에서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과 섬뜩함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때 느꼈던 공포는 단순히 겉모습이 변한다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그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작품 속에서 대니와 칼이 느꼈던 그것이 막연하게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것을 다른 말로 쓴다면 가능성이 되어, 더 나은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답을 내지 못하고 또 다시 꼬리를 무는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이 글을 쓰는 마지막까지도 이 작품이 던져주는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본다면 매우 흥미롭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란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