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8.
잠시 손을 녹이고 있자 고깃집의 문이 열리며 J형이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검은 머리를 하고, 캐주얼한 정장 위엔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얇은 테의 안경까지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반가움을 담아 친절한 표정을 덧입히며 간신히 웃음을 숨겼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평범한 30대의 모습이겠지만, 내 머릿속에선 노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도 벌써 4년이나 지났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에 바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여기 꽤 멀더라고', '고기가 맛있겠네요'와 같은 상투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4년 만의 재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둘 사이엔 적막함만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눈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면서 대화거리를 찾다가 그의 약지에 낀 결혼반지를 보았다. 그리고 난 물었다.
"형, 음악은 아직도 하고 있죠?"
전혀 유머러스하지도 않은 질문이었지만, 그는 엄청난 농담이라도 들은 듯이 끅끅대며 웃었다.
"결혼은 현실이야. 그렇기 때문에 모든 동화는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면 끝나는 거라고."
단호하면서도, 담담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J형의 모습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덕분에 기껏 준비했던 이야깃거리들이 무색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사라지고 남은 빈자리의 대부분을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로 채웠다.
그는 테이블이 쾅하고 울리도록 술잔을 내려놓는 것으로 술자리를 마쳤다. 4년 전과 똑같은 마무리였다. 그는 일어나서 비틀대며 걸어 나갔다. 예전엔 아무리 술에 취해도 비틀대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넘어지지 않으려 간신히 다음 걸음을 내딛는 모양으로 버틸 뿐이었다.
그는 한걸음 앞에서 걸어가다, 뒤로 쓱 돌아 나를 보았다. 그리고선 지갑에서 5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택시비나 해."
그렇게 말했다. 예전에도 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5000원짜리를 꺼내며 택시비를 챙겨주곤 했다. 그때 그것은 꾸깃해서는 조금 가죽 냄새가 났고,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지폐였다. 지금의 5만원엔 그러한 것들이 없었다. 그저 차갑고 빳빳했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 보였다. 걸음마다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씩 비틀거렸다. 묘하게 박자가 딱딱 맞아가며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왠지 야속하기만 했다.
- 2018, 봄「P가 말했다」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