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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딜레마와 자기희생

게임 <페이블 3>을 통해 살펴본 도덕적 딜레마 해결 방법

by 나호정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 결정까지 어느 순간에서나 선택지가 놓여있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들 사이에서 나름의 기준을 잡곤 하는데 그 예로는 현실적인 결과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고, 혹은 과정에 있어서 도덕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많은 꼬리표들이 붙을 수 있으나 도덕적인 판단에 의한 선택들은 대부분 옳은 선택들로 보인다.


하나 이러한 도덕적 선택에 대해 딜레마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라이온 헤드 스튜디오'에서 발매한 게임인 <페이블 3>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제시한 뒤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구한다.


게임 '페이블 3'의 간략한 스토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형(여자라면 오빠)인 로건이라는 폭정을 일삼던 왕을 내쫓고, 알비온이라는 나라의 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게임 중반부에 주인공은 영적인 존재인 '테레사'에게 한 가지 소식을 들으며 게임의 내용은 여러 갈래로 갈리게 된다.


테레사 : 알비온은 곧 공격을 당할 거란다. 어둠의 도래는 피할 수 없단다. 1년 뒤 어둠이 알비온을 덮칠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준비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해내는 것뿐이야. 하나는 지금까지 네가 했던 서약을 모두 지키며 인자한 지배자가 되는 거란다. 하지만 이럴 경우 왕국을 지키는 데 많은 힘을 쏟아부을 수 없고, 따라서 큰 재앙을 겪게 될지도 몰라. 그리고 또 하나는 서약을 어기는 거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거지. 군대를 키우는데 필요한 자산은 충분해지겠지만, 넌 미움을 받게 될 거란다. 이 길을 선택한다면 로건과 마찬가지로 폭군이 되겠지.


꽤나 잔인한 선택지이지 않을 수 없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선한 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많은 국민을 잃게 될 것이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전쟁에서 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지켜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폭군을 밀어내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갖게 된 왕의 자리에서 다시 폭정을 일삼아 그들에게 또다시 악몽의 나날들을 선사할 것이다.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경계가 명확하다.

게임은 완벽한 딜레마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시스템을 두었다. 그것은 선과악 시스템으로 주인공의 선택의 결과는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게 하여, 선과악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 주인공을 표현한다. 선의 모습일 때에는 말 그대로 인자한 표정을 하고 있고, 반면 악의 모습일 때에는 흉폭한 표정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두 가지의 선택지들의 정책을 적절히 섞어 완벽한 정치를 이루겠다는 꿈은 이러한 게임의 선과악 시스템에 막히게 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국민을 편하게 이끌었지만 결국 전쟁에 패해 나라를 파멸로 이끈 왕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전쟁에서 승리해 많은 국민의 목숨을 구하지만 폭군의 타이틀을 달고 불명예를 안을 것인지. 그 어느 쪽이 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덕적 판단의 근거를 과정에 두느냐 결과에 두느냐에 따라 그나마 힘겹게 선택지에 손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해서 약간씩의 변명은 가능하다. 먼저 처음의 선택지는 결과가 비극임을 알더라도 매 순간 도덕적 판단을 행해야 한다는 윤리관에서 비롯되어할 수 있다고 본다. 나중의 전쟁에 의한 피해는 나중에 때가 되었을 순간에 신경 써야 하는 일이며, 그것을 우려하여 당장의 도덕적 선택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핑계로 들릴 뿐이다.


후자의 선택은 결과까지 가는 동안은 힘들지라도 결국 그들의 가장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생명'을 지켜줬으므로 과정 중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 순간의 도덕적 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은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용인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게임의 엔딩은 앞선 두 가지의 선택 외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희생'이다. 왕이 된 플레이어는 편하게 왕좌에 앉아 몇몇 개의 정책들을 선택하며 어둠이 덮쳐오는 순간을 다소 편하게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국고를 채우기 위해 힘든 모험을 하고, 열심히 활동을 하여 '자기희생'을 통해 재정상태를 건실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진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선한 왕'과 '무손실'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도덕적 딜레마에서 한 가지 해답을 얻었다. 앞에 놓인 두 가지의 선택지에 손을 내밀기 전에 한 발짝 물러나 내 스스로가 선택지가 되어, '자기희생'을 통해 도덕적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의 손실들을 나 자신이 내부적으로 소모해버려 그것들이 어떠한 모습으로든 외부적인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야 이러한 자기희생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때 게임이 주는 교훈을 진정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조금 의미를 확장하여 살펴보면 여러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충분함에도 다른 제약조건에 의해 감히 행하지 못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바쁜 일상 중에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도와 함께 미는 것을 서슴지 않고, 피곤한 일상 중에도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자기희생'이라는 답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진 엔딩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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