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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n 17. 2016

'돌연변이'와 '엑스맨'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찾은 '수용'의 과정

2000년 9월 한 유명 연예인이 신문 1면에 실렸다.


신문은 그의 성적 취향을 빌려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이러한 면에 개방적이지 않았고, 해당 연예인은 이후에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며 자신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짊어졌다. 이 이야기는 바로 연예인 '홍석천'의 것이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에게 솔직했을 뿐이지만,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여겨졌다.


이렇듯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는 비단 앞선 예시에서의 성적 취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상이나 성격, 과거의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누구든지 이러한 세상밖에 함부로 내지 못하는 비밀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릇된 일이 아니며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내는 것은 하나의 선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재된 비밀들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과연 세상에 용인될 수 있는 옳은 것인지, 아니라면 어떤 행동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2016년 5월에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감독의 엑스맨 : 아포칼립스에서는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갖고, 앞선 고민들에 대한 길을 제시한다. 보통 사람과 달리 초능력을 갖고 있는 돌연변이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구경거리가 되거나 일반적인 사람의 범주에서 제외되는 약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현실과 엇비슷한 모습을 가진 그곳에서 '프로페서 X(제임스 맥어보이 분)'학교를 설립해 다른 돌연변이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단다.


그의 학교에 한 소녀가 있었다. 염력과 그 이상의 강력한 초능력들을 가진 '진 그레이(소피 터너 분)'는 어느 날 꿈속에서 파괴되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 그것이 미래의 모습이라고 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 프로페서 X는 그녀가 단지 이해하지 못해 두려워하는 것으로 그것에 대한 해답으로 조절하면 된다고 말한다.


영화 밖에서도 이런 두려움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모습이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알때, 흔히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왜 이러한 모습인지 알 수 없고, 때론 스스로를 강하게 부정하여 원망스럽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잃고 올바른 길의 변두리로 내몰려진다고 느낀다. 이러한 안정이 결여된 상태는 쉽게 두려움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에 프로페서 X는 조절을 해답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곧 옳지 않다.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는 그 대상 자체는 조절을 할 수 없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므로, 곧 그의 해결책은 모순이 될 뿐이다.


이렇듯 돌연변이라는 딱지가 붙은 그들은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고, 이것은 그대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져 음지에서 살거나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다. 이러한 영화 속 세계에서 세상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돌연변이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레이븐 다크홈(제니퍼 로랜스 분)'이었다.


나이트 크롤러 : 그 영웅 맞죠?
미스틱 : 난 영웅 같은 거 아냐.


'레이븐'이라는 그녀는 사실 '미스틱'이라는 이름을 가진 돌연변이이다.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그녀는 과거에 대통령이 암살당할 위기에서 구해주었고, 그때의 그녀의 모습은 파란색의 피부를 가진 돌연변이의 모습이었다. 돌연변이로서 그녀는 대통령을 구하며 대중들 앞에 어쩔 수 없이드러났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영웅적인 모습은 다른 돌연변이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되었고, 많은 돌연변이들이 그녀를 영웅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영웅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의 모습이 알려졌던 계기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 개인의 비밀이 있을 때, 이것은 곧 말 그대로 비밀이며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그 비밀을 갖고 있는 소유자에 한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때때로 이것이 본인의 의지와는 관련 없이 새어나가곤 한다. 이렇게 준비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은 오히려 그 비밀을 당사자는 더욱 감추게 되고,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우선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그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에서 그녀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있었으며, 그녀 스스로 영웅적 자질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고 영웅의 타이틀을 거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초의 돌연변이'로 불리는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 분)'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방법은 당연히 옳지 않다.


위대한 힘을 가진 자들이여.
힘없는 자를 보호해라.


아포칼립스는 프로페서 X를 통해 돌연변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프로페서 X는 아포칼립스가 전하고자 했던 '위대한 힘을 가진 자들이여. 이 지구는 너희들 것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위대한 힘을 가진다들이여. 힘없는 자를 보호해라.'라는 말로 바꿔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한 부분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비밀이 정말 수용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노력에도 그것들은 마음처럼 쉽게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길을 정해주기밖에 할 수 없다. 영화에서 그것은 파괴나 정복의 부정적인 면이 아닌 보호와 같은 긍정의 방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의 것들을 예로 들면, 자신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것의 방향이 외부를 향한 화(火)가 아닌 열정(熱情)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소심함의 성격은 차분함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갖고 있는 비밀에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시켰을 때, 그것들은 수용할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비밀에 방향을 설정하고도 그것을 쉽게 수용할 수는 없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성장과정이며, 이러한 성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비밀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한 가지 길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신뢰에서 비롯된 함께라는 것이다.


프로페서 X : 넌 절대 이기지 못해. 왜냐면 넌 혼자고, 난 혼자가 아니니까!


아포칼립스는 강했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프로페서 X의 일당들은 위기에 빠졌다. 그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마지막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혼자가 아닌 진 그레이덕분이었다. 더불어 그의 동료들 또한 그를 함께 공격하며 마침내 아포칼립스를 저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 내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가 두려워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 그레이는 자신의 모습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마침내 불사조를 연상시키는 방대한 힘을 방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에게 강력한 힘이 되었다. 즉,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그 신뢰는 진 그레이 본인 스스로에게 적용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마침내 자신의 비밀을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밖 현실에서도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비밀로만 여기던 모습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뢰다. 그 비밀이 세상 앞에서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스스로가 신뢰하고, 그 과정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이 배경이 되어 완성한다면 그 비밀은 마침내 더 이상 숨겨진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한 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 간의 거리는 좁아지고,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가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성격, 가치관, 성적 취향 등 자신의 본연의 모습들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고, 더욱이 자신 스스로에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물렁하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고, 이 또한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자리 잡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것의 마지막 단계에선 신뢰가 놓여있어야 온전한 가치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돌연변이들은 학교로 들어가기를 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돌연변이로 불리지 않고,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기호인 'X'를 빌려 '엑스맨(X-Men)'이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쓰기로 하고, 개개인을 신뢰라는 단단한 끈이 그들을 함께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세상이 정해준 돌연변이라는 별칭에서,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엑스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직 돌연변이로 불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을 우리의 모습 중 하나로 인정하고 솔직해질 수 있을 때, 우리 또한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엑스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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