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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n 09. 2016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영화 <억셉티드>에서 찾은 '교육'의 의미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인 이 문장은 취업의 문턱이 더더욱 높아진 현대에 유머처럼 퍼져나가는 말이다. 인문계열의 낮은 취업률과 동시에 그들을 낮춰 보이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들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게까지 만들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대학교들은 인문계열 전공을 폐지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이공계열에 투자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대학교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퇴색시키기 마련이다. 이는 인문계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2016년 2월 1일 부산 신라대에서는 화려한 무용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결코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다. 퍼포먼스의 제목인 '눈물의 춤판'은 무대를 슬픔의 상징인 눈물로 채우고 있을음 보여준다. 그 뒤에는 앞선 것과 마찬가지로 취업률이라는 잣대에 지워져 버리는 꿈이 있었다. 낮은 취업률을 빌미로 예술계열인 무용학과가 존폐의 위기를 맞아,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무용으로 뜻을 전한 것이었다.


이렇게 대학교라는 시스템은 현재 단지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현실이라는 것을 핑계로 당연시되고 있다. 2016년의 이러한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2006년에 영화가 하나 개봉했다. '스티프 핑크'감독의 <억셉티드(Accepted)>는 이러한 현실을 담은 모습을 통해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정말 남은 인생에 뭘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주인공 바틀비 게인즈(저스틴 롱분)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예비 대학생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원했던 모든 대학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동생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전혀 틀린 모습이 아니다.


성인이라는 타이틀에 첫발을 내디딘 많은 20살은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의 길이 확고하여 신념을 갖고 꾸준히 정진해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2년 전 한국 직업능력 개발원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무려 72.7퍼센트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전공 선택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전공이 생각과 달랐다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대답이 상위권을 차지했고, 그다음 대답도 취업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20대의 출발점에서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대학교는 다양한 길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길 위에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들을 내놓을 뿐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20대에게 대학이 정한 길은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다시 영화의 얘기로 돌아와서, 바틀비는 직접 자신의 길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가짜 대학을 만든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우리는 한정적인 자유가 주어진 20살의 나이 앞에서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이미 이것에 대한 대답을 정해놓고, 그 가운데 채워야 할 학점을 자유라는 것으로 둔갑시켜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이 자유를 맞이한 학생들은 그 가운데에서 진짜 배우고 싶은 것보다는, 학점을 잘 받을 수 있거나 수업내용이 어렵지 않은 것 등 수업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 보다는 그 외의 부차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하기 마련이다.


바틀비가 만든 가짜 대학인 '사우스 하몬 기술 대학'에서는 진짜 대학과 같은 교수진이나 커리큘럼과 같은 필수적인 것들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학생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자극시킬 수 있었다. 반면, 대학의 시스템에 대해 알기 위해 바틀비가 보았던 명문 대학이라고 칭해지는 하몬 대학에서는 이미 짜 맞춰진 교육 과정이 그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앗아가고 있었다. 교수님의 수업은 일방적인 듯 보였고 학생들의 태도는 수동적이었으며, 능동적인 태도의 학생 또한 배움에 목적이 있지 않은 점수에 목적이 있었다. 이런 모습의 대학교는 비단 영화 속만의 모습이 아니다.


현실에서의 많은 대학 수업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대학의 목적이 배움이 아닌 취업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점수를 따기 위해 경쟁구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상대평가가 이루어지는 과목에서는 자신이 아는 지식에 대해 서로 나누는 모습이 아닌, 남들보다 더 나은 점수를 위해 숨기기도 한다. 또한, 조별과제 역시 팀워크를 발휘하여 시너지를 일으키기보단 흔히 스트레스를 주고 오히려 배움에 대한 열정을 저해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짜 총장인 '벤(루이스 블랙 분)'은 '배움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배움의 자세에 있어서 수동적이기보다는 주체적인 관심을 통해 능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사우스 하몬 기술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학과를 설정하고, 관심이 있는 수업을 조건 없이 들어가 능동적인 배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정적이고 생기 없는 모습의 이름만 명문인 하몬 대학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언제나 사우스 하몬 기술 대학에서는 언제나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런 다소 진짜 대학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가짜 대학은 하몬 대학의 계략에 의해 위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가짜속에서도 진짜는 존재했다.


진짜 교육은 '사우스 하몬 대학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진실이죠.
진정한 교육엔 교사, 전통, 돈 따위는 필요 없어요.
더 나아지길 원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되죠.


그는 인가를 받기 위해 열린 심리에서 꽤나 많은 부분에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정식 교수나 정식 커리큘럼이나 정식 시설들은 없었다. 그 모든 것은 현실에 뒤쳐지고 싶지 않아 만든 가짜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절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가짜들은 아이러니하게 진짜 교육을 이끌어 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배우고 자신이 잘 아는 것에 대해 마음껏 알려주며, 배움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배움에 대한 열정은 진실되었고, 이것은 그들을 성장하게 만들었다. 전통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자신들을 진짜라고 주장하던 하몬 대학은 오히려 가짜 교육을 하고 있었고, 진짜 교육의 모습은 가짜 투성이었던 사우스 하몬 기술 대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이런 진정성 있는 발언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들이 시범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진짜 교육 기관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영화는 진짜 교육에 대한 답을 제시하며 현실의 가짜 대학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교육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고 이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열정과 창의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참된 교육의 모습을 영화는 보여준다. 우리들은 모두 현실에서 정해진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펼쳐 나갈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절대로 취업률에 따라 그것이 무력해져선 안되고, 취업률과 같은 절대적인 현실 조건들이 사람들의 꿈을 짓밟아서는 안된다. 영화에서의 진짜 대학 인 줄 알았던 하몬 대학에서는 교복이나 정장 차림에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사우스 하몬 기술 대학은 모두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옷을 입고 각자의 길을 찾고 있었다. 100명이 있다면 100개의 꿈이 있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길을 교육기관인 대학교가 막아서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들의 꿈은 소중하다.

그리고 대학의 참된 교육이 이루어질 때, 을 향해 마음껏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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