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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n 25. 2016

용의자 X 아닌 그의 '헌신(獻身)'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찾은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거 고대의 철학자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내놓았지만 어느 하나 정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랑은 추상적이고 형체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대답이라도 그것의 모습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고, 단지 머릿속으로나마 그것의 느낌을 그려볼 뿐이다. 이러한 사실과 동시에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 형태를 갖게 된다. 


보통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에서 묘사되는 사랑의 모습들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풍부하다. 그런데 어떤 작품들은 사랑이란 요소를 전체적인 프레임이 아닌 그것이 갖고 있는 단편적인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경우에는 사랑을 불륜의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을 통해 전달하며, 이러한 작품들은 그것이 '사랑이다, 아니다.'로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한 2008년에 개봉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색을 유지하며, 끊임없는 두뇌싸움이 이어진다. 영화를 구석구석 살펴보아도 남녀 주인공의 달달한 장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이 분명 영화가 담아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지 살펴보자.


사랑? 확실히 그건 비논리적인 것의 상징이지.


'유카와 마나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냉철한 시각으로 논리를 통해 사물을 판단하는 물리학자이다. 그는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우츠미 카오루(시바사키 코우 분)'는 사랑을 반례로 들고, 이에 유카와는 사랑은 비논리의 상징이라고 칭하면서 그것에 동의한다.


사랑의 그래프


필자는 여기서 조심스럽게 그가 정의 내리지 못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시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사랑은 '감정적인 기준이 이성적인 기준에 극한으로 다가가는 것.'으로 얘기해 보겠다. 즉, 사랑이란 그래프의 양쪽에서 시작해 감성이 이성에 가까워질수록 사랑에 가까워지고, 감성이 차지하는 넓이에  따라 사랑의 깊이에 차이가 생긴다고 본다. 감성이 이성의 끝에 다가가 그래프를 꽉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완성된 사랑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다면 빗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다든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이 걸리는 길도 마다하지 않는 등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으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는 감성적인 부분의 넓이가 이성적인 부분 부다 커져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이성적 기준이 다를 수 있으므로, 사랑의 표현방식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무조건 감성적인 수치가 커지는 것이 좋은것은 아니다. 만약 감성이 이성을 침범해 그 기준이 무너져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 그 사랑은 완성될 수 없고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시가미 테츠야(츠츠미 신이치 분)'는 옆집에 사는 '하나오카 야스코(마츠유키 야스코 분)'의 살인 행위를 덮어주려 한다. 그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통해 자신이 야스코의 죄를 뒤집어 쓰려한다. 여기서 이시가미의 행동은 감성이 이성의 잣대를 무너뜨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데서 나온 결과다. 그렇다면 이시가미는 결국 사랑에 눈먼 살인자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사랑때문이 아닌 그의 신념과도 관련이 있다.


유카와 : 넌 왜 그런 것을 하고 있지? 4색 문제는 이미 증명된 거야.
이시가미 : 그 해답은 아름답지 않아.


살인자의 모습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이시가미는 4색 문제라는 '인접한 나라끼리 겹쳐지지 않도록 4개의 색으로 모두 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손을 이용해 풀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4색 문제는 컴퓨터를 통해 답이 나온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4색 문제를 손으로 잡고 있는 이유는 아릅답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문제라는 것은 그러했다. 그것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했고, 그의 살인 행위의 퍼즐을 푸는 것은 단순한 '답을 찾아도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문제'. 즉 그것의 결과에는 아무런 좋은 뜻이 없는 아름답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그가 만든 퍼즐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헌신의 모습을 보여준 대상인 야스코가 다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된 것이다. 때문에 그가 거짓 자백을 통해 교도소에 들어가 천장을 보았을 때, 자신만의 아름다움의 상징인 4색 문제를 천장에 그려가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게 완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성의 기준이 무너진 사랑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야스코 : 함께 벌을 받겠어요...
이시가미 : 어째서죠? 대체 왜...


결국 야스코는 자백을 하게 된다. 이시가미가 만든 자신의 아름다운 인생을 야스코는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 죄를 고하고 그의 아름다움을 망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절규하며 야스코에게 이유를 물으며 끌려간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행했던 행동이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와 그녀는 표면적인 모습만 본다면 살인자이며, 마땅히 벌을 받아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절규는 타락한 인간의 단편상이 아닌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해 절망하는 한 남자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야스코의 자백은 한숨을 더하고, 이시가미의 눈물은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사랑을 깊이 담아냈다. 항상 냉철한 시각과 논리만을 말하던 유카와는 어느새 이시가미와의 첫 만남 때의 장소로 돌아와, 그의 빈자리를 몸소 느끼며 사랑이란 것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츠미는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말하며 그의 삶에서 사랑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사실 영화는 제목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부터 메인 소재는 범인과 형사의 공방전(攻防戰)이 예상되는 단어인 용의자 X가 아닌 그가 보여준 헌신에 놓여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애정 가득한 헌신이 사랑의 모습 중 하나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영화는 이렇게 완전한 사랑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그의 사랑을 그려냈다. 물론 그의 사랑을 표현한 방법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감정이 이성을 넘어 일어난 결과였다. 영화는 그의 사랑을 보여줬지만, 이러한 이성의 기준이 무너진 사랑은 실패로 이어진다는 것을 야스코의 자백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렇듯 사랑이란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시가미가 보여준 헌신의 방법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의 마음은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마음만 본다면 영화 밖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더욱 사랑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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