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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n 27. 2016

'자연'과 '인간의 삶'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찾은 '음식'의 의미

'먹방'과 '쿡방'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인 음식이 최근에 와서 다시 먹방과 쿡방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올랐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시작된 먹'은 현대 사람들의 1인 식사 문화에 소통을 담아냈고, 화려한 재료들이 아닌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최대의 맛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백종원 요리연구가의 쿡방으로 음식이란 단어의 대부흥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요리하고 먹는 과정에서의 음식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 문화로 자리잡기까지 했다.


이렇듯 음식은 인간 세상에서 빼놓을 수 없고,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여러 방법으로 소소한 행복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음식들이 재료인 상태로부터 시작해 소비되는 것까지만 보기 마련이고, 그것들의 시작점은 쉽게 간과할 수 있다. 물론 음식이 되는 재료들의 출발점은 자연이고 그 과정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자연이 음식을 통해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단지 소비적으로만 음식들을 맞이하곤 한다. 


2014,5년에 이러한 음식에 대한 고찰을 자연을 배경으로 담아낸 영화가 있다. '모리 준이치'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국내 TV 프로그램인 <삼시 세끼>의 이름을 빌려 '일본판 삼시 세끼'로 알려졌다. 영화 속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음식의 모습들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코모리는 토후 후 지방의
작은 마을입니다.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 분)'는 코모리라는 시골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도시의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하루하루는 이러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자연은 그대로 그녀의 시계가 되어, 그녀의 행동을 일일이 제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뿌리내린 잡초를 힘들게 뽑아내고 비가 많이 내린 날씨에 못쓰게 돼버린 토마토를 보며 절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습도가 높은 날에는 빨래가 마르지 않고, 생기는 곰팡이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대한 자연은 이렇듯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간사(人間史)를 살펴본다면, 인간은 무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루어진 과학의 발달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간이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행동들은 무자비했다. 때문에 현재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가 대두되기도 하고, 더불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환경 문제를 곁들인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자연은 긴 역사를 놓고 보았을 때 최근까지도, 인간의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가 보여준 장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연이 더 큰 존재로 그려져 그녀를 한없이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들은 이러한 거대한 자연 앞에 굴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수유의 계절이 돌아왔다.
많은 열매들이 떨어져 썩어간다.
그 많은 과정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그런 건 너무 슬프잖아.
잼을 만들어보자.


그녀는 떨어진 수유의 열매들을 보고선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들이 쓸모없게 돼버린 것에 대해 슬픔을 느끼고 잼을 만들기로 했다. 즉 끝을 맞이한 자연을 인간이 다시 새로 쓰임새를 갖게 한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것이 아닌, 한 세계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 자연과 인간의 소통의 수단으로 음식이 사용되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에 대해 말하며, 자연과의 소통을 보여준다. 자연과의 소통은 단순히 재료를 요리하는 것이 아닌,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때론 망친 농작물에 절망하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변하는 재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료를 말리기 위해선 뜨거운 햇빛이 필요하고,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에 하나다.'라고 말하며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그녀의 음식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재료가 됨을 말해준다. 


이렇듯 음식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러한 음식 또한 인간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데에도 쓰이곤 한다.


이치코 : 그게 밥이야? 항상 빵한개 먹어?
남자 : 비타민도 챙겨 먹어.


현대인들에게 밥이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가 아닌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해 버린감이 있다. 편의점에 즐비한 많은 간단 조리 식품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 보다는 빠르고 간단한 것이 더욱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런 세상에서 영화는 음식이 또한 인간 사이를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음식에 정성을 담는다고 해서, 전혀 다른 맛이 된다거나 미각적으로 월등히 뛰어나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마음은 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전해진다. 음식은 요리사를 떠난 뒤에는 다시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음식의 역할은 먹히는 데에만 있어, 손을 떠난 음식은 소비되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것에 정성과 마음을 담는다면,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고 뿌듯함과 같은 좋은 감정의 가치들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고 이로써 인간끼리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서도 그녀는 음식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마을 사람들과 나눠먹는 모습에선 기뻐하기도 하며 음식이 단순 식품이 아닌 사람들을 잇는 소통의 수단으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까지고 이런 자연속에서 있고 싶지 않아했다. 다시 떠날 날을 기다리며 코모리 마을에서의 반복 뿐인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그녀에게 엄마의 편지는 하나의 뜻을 전한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그녀에게 보낸 엄마의 편지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반복이 이어지는 삶이 실패에 의한 원의 모양을 한 헛된 것이 아닌, 같은 자리에 돌아왔더라도 경험을 통해 높이가 달라진 나선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언제나 반복뿐인 일상 속에 그녀는 그렇게 의미를 담아냈다. 이는 자연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사계절이 이어지고 변화무쌍한 듯 보이는 자연은 언제나 일정한 반복 속에서 다시금 예전 모습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느새 살펴보면 강산이 변해있고, 알게 모르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그것의 반복적인  일상이 일생이 되어버릴 것처럼 느껴지고, 이를 실패로 생각해 회의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도 그동안 보고 들은 것들은 어느새 경험이 되어 나를 다른 높이에 위치하게 만들며, 하루의 과정들은 실패가 아닌 경험을 통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두 편으로 나뉘어 자연의 사계절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 사이 이치코는 음식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녀는 이러한 자연을 떠났다가 다시금 돌아와 어느새 남편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가 다시 코모리 마을로 돌아온 것은 실패가 아닌 경험이었으며, 그것을 형상화시킨 남편을 통해 인생은 나선이라는 뜻을 드러낸다.


우리는 반복뿐인 삶 속에서 단순히 자연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음식을 통해 우리 또한 이치코가 그러했듯이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것이 소통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연을 닮은 인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자리를 맴도는 원이 아닌 나선임을 깨닫는 다면 우리들의 세상은 좀 더 맛있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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