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줍'이란 말이 좀 그렇다

보통날

by 모소

2019년 8월 2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우리 차 보닛 안에서 '야옹야옹'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아주 가녀린걸 보니 아기 고양이 같았다.

보닛을 열었다. 아기 고양이가 무려 세 마리나 있었다. 어찌나 귀엽던지...

아기 고양이를 함부로 만지면 어미 고양이가 데리고 가지 않는다, 어미가 물어 죽인다, 등등 이런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어미가 아기들을 수월하게 데려가게 하기 위해 아기 고양이들을 보닛에서 조심스레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6시간 후,

아기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휴, 데리고 갔나 보다. 다행이야.

그런데! 우리 차 보닛에서 또 야옹야옹~ 소리가 났다.

다시 열어 보니, 아까 그 아기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보닛 안은 위험하지 싶어 박스를 가져와 아기들을 박스에 담고 우리 차 바로 옆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데려갔을까?

궁금한 마음에 얼른 주차장으로 갔다. 역시, 어미가 아기들을 데리고 갔다.

휴, 다행이다.

속에서 뭔가 작은 덩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보닛에 귀를 대보더니 야옹 소리가 난단다.

오잉? 난 안 들리는데?

보닛을 열었다. 고양이는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환청인가벼~


그날 오후.

아침의 남편 말대로 진짜로 보닛 안에서 야옹 소리가 났다. 보닛을 열고 아무리 뒤져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야옹 소리는 계속 들렸다. 우리 엄마에, 아빠에, 동생까지 온 식구를 출동시켜 고양이를 찾았다.


헉!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보닛 아래쪽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었다!

어미가 못 꺼내 갈 위치가 아닌데, 왜 쟤만 두고 갔지? 고양이 모성애가 엄청나다던데?

의심스러웠다.

동생이 차 아래로 들어가서 아기 고양이를 꺼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제의 세 마리와 달랐다. 한쪽 눈이 감겨있는 것이, 어째 장애가 있어 보였다. 또 어찌나 말랐던지. 어제의 세 마리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아픈 아이를 박스에 담아 놓았다. 어미가 잘 데려갈 수 있게끔.

그러나 3시간, 5시간이 지나도 어미는 데려가지 않았다. 아픈 아이는 전날 아침부터 우리 차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최소 15시간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란 말이다. 저대로 뒀다가는 죽을 것 같아 큰 맘먹고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다른 데도 아니고 우리 차에 있었던지라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동물병원.

수의사는 눈에 농이 잔뜩 껴서 치료하면 실명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농 때문에 한쪽 눈을 못 뜨는 거라고... 그러면서 나보고 책임질 거냐고 물었다. 얘는 자연으로 돌아가면 오늘 밤을 못 넘긴다고... 고양이는 약한 개체를 무리에서 탈락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어미에게서 버림받은 거라고 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사실 난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무서워한다.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데 뭐에 씌었는지 그러겠다고 했다. 허허허.


수의사가 눈 치료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수의사는 '실명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눈에 약을 퍼부었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흔히 쓰는 말로 '냥줍'을 한 것이다.


냥줍이라... '고양이를 줍다'라는 의미인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딱히 대체할 말이 없으니 이렇게 단어를 만들어 쓰는 듯하다. 굳이 말을 만들 필요가 있는 걸까? 흠... 뭐, 맘에 안 들면 안 쓰면 되지 싶다.


어쨌든 우리 아들이 '야롱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KakaoTalk_20190904_071655178.jpg 야롱이가 병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찍은 사진


그리고 한 달 후.

한 달 동안 안약 넣어주고, 항생제 먹이고, 분유 먹이고, 이유식도 해 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나는 원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데도 야롱이는 너무 귀여웠다. 물론, 여전히 잘 만지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야롱이는 점점 건강해져 갔다. 눈도 초롱초롱.


k.jpg 많이 건강해진 야롱이


그런데, 우리 아들 코가 심상치 않았다.

헐, 고양이 알레르기!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우리 집에서 계속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들의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진 않았기에 야롱이가 이유식을 먹을 때까지만 우리가 돌보다가 친척이 사는 시골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음... 마음이 안 좋았다. 짠하고 뭐, 좀 그랬다.


지난 주말.

우린 야롱이와 함께 시골집으로 갔다. 아직 어려서 풀어놨다가는 들고양이나 산짐승한테 잡아먹힐까 봐 조금 더 클 때까지는 우리 안에서 키우기로 했다. 본래 고양이는 가둬 키우는 것이 아니거늘...

그래서 남편과 나는 아주 크게 야롱이 집을 지어주었다. 자체 캣타워도 설치해주고.

역시 집 짓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이라기엔 좀 거창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온 힘을 다해 만들었다.


dd.jpg
dddd.jpg 야롱이의 새 집


갑작스런 변화에 야롱이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야롱이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았다.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온 몸으로 새 집을 느끼고 있었다.


야롱이를 못 본 지 벌써 이틀 째.

잘 있나 보고 싶다. 오늘 비 오는데 무섭진 않으려나... 걱정된다.

주말마다 가야겠다.

얼른 커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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