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 덕후 할 수 있을까

by 김보리

대만 그녀가 일박이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나는 그녀를 ‘연어’라 부른다. 이름 철자가 연어, SALMON과 비슷해 그리 부르기로 했고, 그녀도 좋다고 했다. 3년 전 제주 서귀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났다. 94년 생이라 하니 딸보다 네댓 살쯤 많은 나이. 그녀도 나도 올레를 걷던 중이었던지라, 다음 날 9코스를 같이 걸었다. 내가 길 안내자인 셈인데, 지갑을 두고 온 바람에 교통비 신세를 졌고, 대신 저녁을 후하게 대접했다. 함께 있는 내내 대화가 경쾌하게 이어졌다. 여행지에서는 나이 차 같은 걸 잊게 된다. 국적이 다를 땐 더욱 그렇다. 쌍꺼풀이 진하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그녀는 제대로 제주를 즐겼다.


제주 이후 부산에 들러 서울에 올라온 그녀를 동대문 교촌 치킨에서 한 번 더 만나고, 다음 날엔 어쩌다 보니 나의 모교에 함께 가게 되었다(가고 싶어 하더라). 자주 가던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순두부찌개와 소고기 뚝배기를 나눠 먹으며 유명한 식당보다 이런 곳이 더 좋다고, 로컬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즐기던 그녀. 그런 그녀가 3 년여만에 서울에 왔는데 고작 하루 자고 돌아간단다. 슈퍼주니어와 세븐틴 팬이라더니,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규현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빠듯한 일정에 개의치 않고 서울에 왔다.


찜질방에서 밤을 보낸 그녀는 동대문 본죽으로 나를 불러냈다. 열한 시에 열리는 세븐틴 팝업 행사를 보러 성수에 가야 한 데나, 뭐라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8시 반, 한국-대만 비(非)정상 조찬 회동. 세븐틴 멤버가 열일곱이 아니라 열셋인 걸 그녀 덕에 알게 됐다(팀 인원 13 + 3개의 유닛 (보컬, 힙합, 퍼포먼스) + 하나의 팀 1, 13+3+1=17이라고). 공연을 본 후 밤 열두 시쯤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다음 날 8시에 정상 출근했다고 하니, 젊긴 젊다. K-POP이 뭐라고, 눈이 반짝반짝. 피곤 따윈 괘념치 않는 팬심, 그 마음이 궁금하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열정. 돌이켜 보면 사랑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네. 짝사랑 빼고는.


같은 일터에서 일했던 언니를 비슷한 시기에 오랜만에 만났다. 전에 없이 눈이 반짝인다. 이 활기는 뭐지? 아.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 스무 해 전쯤이었을까. ‘비(정지훈)’에 푹 빠져 있을 때의 딱 그 모습이다. 덕후, 어게인. ‘박보검’에 푹 빠져 있는 언니. ‘응팔’ 때는 호감 정도 있는 수준이었고, 드라마 ‘남자친구’를 보며 그런 사이(?)가 돼버렸단다. 대화의 꽤 많은 부분이 보검이 몫. 덕분에 서로 신세타령 같은 걸 덜하게 되니 그런대로 좋았다. 그 어렵다는 팬 미팅도 딸이 예약해 주고 동행하기도 한 걸 보면, 집에서도 응원받는 눈치다. 생활인으로서 좀 성실했던 언닌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또 생계를 절반 이상 책임지는 반쯤의 가장으로서 부족함이 없던 언니니, 이제 와 누리는 언니의 즐거움을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80년대 인기였던 밴드 보컬의 찐 팬이었다가 그 인연이 계속 이어져 노래의 주인공이 된 언니도 있다. 40년 넘게 알고 지내며 소식을 주고받는 언니는 진정한 성덕이랄까. ‘오빠가, 오빠가’라며 나이 든 가수님을 옆집 오빠처럼 얘기하는 언니를 보면 언니가 내향인이 맞나 싶을 때도 있다. 나 빼곤 다 애인이 있는겨? 그녀들의 활기가 때때로 부럽다.


진정한 덕후란 무엇인지, 덕후가 스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반짝 떴던 트로트 가수의 팬이었던 분이 들려준 증언은 놀라웠다. 똑같은 콘서트를 지방마다 다 따라다니고(대만 연어도 오사카도 가고, 나고야도 가고 그랬더라), 그러다 보면 같은 콘서트를 열 번 이상도 보게 되며, 티켓 비용뿐 아니라, 교통비에 숙박비까지 드니 지출이 좀 큰 게 아니라고. 더 놀라운 건 기삿거리를 찾아내 미담 위주의 제대로 된 신문 기사를 만들어 다양한 지면에 제공하는데, 그 노고도 만만치 않단다. 군소 언론사들은 별다른 검증도 없이 실어 준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 외에도 선물 공세 하느라, 다른 경쟁 스타에게 밀리지 않게 띄어 주느라 돈이 좀 드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 대가는? 설렘과 웃음, 회춘, 그런 걸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


마음에 둔 가수가 꾸준히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빠져 본 적 없던 나로서는 그저 가늠만 할 뿐이다. 마음이 휑하지는 않겠구나, ‘왜 사나, 왜 살아’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일도 줄겠구나, 그런 짐작.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내 또래) 나이 이후가 덕후 하기 가장 좋은 나이일 지도. 문득 소년 가수 정동원의 팬이었던 시어머니가 광고지에서 정동원의 참치 광고 사진을 오려 놓으셨던 게 기억난다. 내내 동원참치만 즐겨 드셨지. 애틋해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애착 ;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네이버 국어사전)

누군가를 강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이따금 동경한다. 집착 이전의 단계라면 삶의 활력소가 될 게 분명하다. 좋아하는 마음의 단계를 열 단계 정도로 나눈다면 스타를 그리며 덕후 하는 마음은 칠이나 팔 이상은 되겠지? 매사에 ‘적당히’로만 살아온 인생은 알 리 없는 열정이다. 나의 애정은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명사들에게 얇고 넓게 퍼져 있었다고나 할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아끼는 마음은 삶을 나긋하게 하고 충만하게 채워줌을 모르지 않는다. 나의 요즈음에 책과 술, 영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건조하기 이를 데 없을 듯. 그에 더해 좋아할 ‘인간’ 하나만 더 있다면 아주 딱일 텐데.


가까운 이들의 덕후질을 지켜보며 나 역시 인생 후반부의 덕후화(化)를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박정민, 요 녀석. ‘쓸 만한 인간’ 임에 분명하다. 두어 다리 걸쳐 건너 들어보니 성품도 제법 ‘쓸 만’하게 여겨진다. 자신의 책에 엄중하며, 무엇보다 출판 초기엔 너무 긴장하는 탓에 북토크 전에 꼭 우황청심원을 먹고 진행했단다. 흠. 나와 닮은 꼴이군. 나도 그거 즐겨 먹는데(어쩔 수 없이 먹는 거긴 하지만). 영화 [변산]을 찾아보니, 짜증 내는 연기가 특히 일품이다. 그래! 박정민이야.......라고 마음먹었으나. 덕후는 결심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트는 곳마다 ‘야이야이야~~’ 음악을 타고 화사와 함께 불쑥불쑥 나타나니, 다소 부담스럽더라는. 여전히 좋긴 좋지만.


덕후도 어쩌면 운명 같은 걸까? 느닷없이 내 삶에 진정한 스타가 등장하게 될까? 꼭 연예인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영화감독이나 운동선수, 작가여도 좋겠지. 한때 허수경 시인을 너무 좋아하다가(시보다는 산문이 좋았다) ‘나는 글을 쓰지 말아야겠구나, 책을 짓지 말아야겠구나’ 다짐했던 적이 있다. 작가의 삶에 대한 경외였고, 글에 대한 추앙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병으로 그리 빨리 저물지 않았다면, 가는 곳마다 그녀를 따라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글 못 쓰게 된 거 책임지라고 앙탈도 부리고. 그토록 곡진한 무언가가 삶에 들어온다면, 그것도 운명이 맞긴 맞겠지. 하늘의 별이 홀연 내 삶에 툭 떨어진 기분 같을까?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것 같아서 손해 보는 기분도 든다.


정신과 정문의 김정일의 오래된 책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는 제목이 내용을 다 말해 주는 책이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혹은 친구가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관계가 내밀한 만큼 다치게 할 계기는 더욱 빈번하다. 대개는 일방적일 때가 많다. 전복죽을 앞에 두고 얘기 나누던 대만 연어는 엄마와 단절한 지 여러 해라고 했다. 들어보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역시나 어린 시절부터 자식들을 아프게 하던 아버지도 몇 해 전 돌아가셨고, 엄마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사는 지금이 살아온 날 중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미소와 눈빛만 봐도 알겠더라. 이제야 안도한다는 얼굴. 부모도 안 돌보며 연예인이나 챙긴다고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할 만큼 했으니, 됐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이런 경우 대개는 최소한의 안전, 최소한의 자존감, 최소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손절이었을 것이다. 그 빈자리만큼을 하늘에서 떨어진 별로 채우는 걸까? 덕후는 어쩌면, 상처받지 않을 사랑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안전이 보장되고, 기대감과 설렘으로 일상은 적당히 양지바른 곳이 되어가고. 개털만 되지 않게 조심하면 되겠다.


그 사랑도 끝은 있을 테니, 사랑이 멈춘 후 너무 공허하지 않게 그 사랑의 중심엔 내가 있어야 한다. 그(녀)가 있어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내(말하자면 팬)가 있어 그들이 있는 것이니. 일상을 단단히 살아 기쁘게 충당할 만큼의 돈도 벌고, 나의 내면도 지키기. 사랑에 일상을 다 내주어서는 안 된다. 내 주머니도 다 털려서는 안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대적으로 소외감 느끼게 하지도 말자. 집안에서 반대하는 사랑이 순탄할 리 있는가? 본능적으로는 스타를 사랑하고, 가족은 계산적으로라도 사랑하자. 삭막하게 표현했으나 그 냉철한 계산 역시 가족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오래된 사랑과 새로 찾아온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어쩌면 그것이 건강한 덕후질, 오래 지속될 만한 덕후질의 베이직 덕목은 아닐지. 그런데 덕후도 아니면서 덕후 계명은 왜 만들고 있는 걸까. 에휴, 박정민 영화 [얼굴]이나 찾아볼까? 야이야이 야아, 야이야이야~~!




작가의 이전글존엄조력사를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