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주의 이혼제도의 명과 암

원수가 되어라 강요하는 법

by NH

이혼은 아프다.

특히 한국의 이혼은 더 아프다.


사회 통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책주의 제도 하에서 이혼을 하려면


서로를 부정하고 있는 대로 없는 대로

헐뜯어야만 하기에 그렇다.


인생 내내 칭찬과 적당한 인정을 받으며

교육받은 제도권 안에서 살아오던 나에게 이혼은


처음 겪어보는 처절한 실패의 경험이자

처음 맛본 사람들의 무시 어린 눈초리였다.


이혼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도

너무 어려웠지만


이혼을 진행하는 과정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이혼은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나뉘고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는 파탄주의를

우리나라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파탄주의란 혼인한 쌍방 중 어느 한쪽이라도

결혼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유책주의는 상대방이 혼인을 깨뜨릴 중대한 유책을 저질렀을 때만 이혼을 인정하는 제도이고,


한국은 법에 정한 6가지 이혼의 귀책사유를 상대방이 범한 경우에만 이혼을 성립시키고 있다.


1.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당연히 근현대 한국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부장의 권위에 대항하는 어느 한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사회적 손실이라 여겼기에


인내로써 가정을 지키는 것이 사회 혼란을 막고

생산성을 유지할 길이라 여겨 유책주의를 채택했을 것이나, 이제는 세상이 좀 바뀌지 않았나.


알다시피 간통죄 폐지와 증거수집의 어려움으로 배우자의 부정을 잡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배우자의 불륜이 적시된 카톡이나 편지, 사진 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이를 증거로 활용하면 정보통신망법 등에 개인비밀 침해로 벌금형에 처해진다.


결국 남은 이혼 방안은 상대방으로부터 모욕을 받았다거나 폭행을 당했다거나 등등의 심히 부당한 대우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소송은 진행된다.


당연히 사실에 입각한 주장도 있으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한 주장도 쏟아져 나오게 되며


그렇게 이혼 소송은..

한때 서로만 바라보고 사랑했던 이들을

서로를 글로써 말로써 죽여야만

내가 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소장을 재판부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도록 거짓으로 점철된 엄청난 분량의 반소장을 제출해서 제출된 보고서를 다 검토하기 어렵게 만드는 기법들도 행해진다.


그 거짓된 엄청난 분량의 반소장을 재판부는 업무시간에 쫓겨 다 읽지 못할 수 있으나 상대방은 한 자 한 자 다 읽고 곱씹을 수밖에 없다.


한 때는 함께 가정을 꾸리고 같은 곳을 바라보던 이에게서 날아온

날 서린 칼이 꽂힌 편지를 받아 드는 경험은,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강인하게 성장시킨다.

.

너무 아프니까..


외국 영화에서 보는

아이를 만나며 자유롭게 왕래하는 전남편/전처는

한국에서 존재하기 힘들다.


나 역시도 아이를 만나러 가는 그 자리와 연락이 매우 불편하다.

이미 내 고소장과 상대방의 반소장이 수차례 오가면서 전처는 내 인생의 내 부모의 원수가 되었으니까..


만약 우리나라가 파탄주의를 채택했다면

어쩌면 나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이렇게까지 전처와 관계가 파탄 나지 않고도

이혼을 하고 서로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 견해는,

파탄주의로 인해 오히려 파탄을 막을 수 있다.


결혼에 명목상 완벽하고 절대적인 유책사유를 일으키는 사람이 간혹 있으나,


가정법원에 오는 대부분의 이혼을 청구하는 소시민들은 어느 한쪽의 완벽한 유책이 아니라 성격차이와 생활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다.


물론 양쪽 다 이혼을 원하면 논쟁 없이 이혼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한쪽은 지쳤고 어느 한쪽은 더 노력해 보자는 등으로 이혼에 대한 타이밍이 다른 대부분의 경우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혼인의 지속 의지가 꺾였다면

이들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파탄 나게 되어있다.


그들을 빨리 고통의 수렁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자신의 인생을 재건할 기회를 주는 것이 요즘 사회의 시대정신에 더 맞는 것이 아닐까.


안 맞는 서로를

서로가 유책범죄를 저지르게 유도하고 헐뜯고 비방하며 소송 전을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제도가


과연,

작금의 대한민국 혼인율 급락에 기여하는 부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스템 상 모든 것은,

어렵게 만들어야 권력과 권위가 서고,

쉽게 만들어야 끊임없는 직관적인 수요가 발생한다


혼인 제도는,

더 이상 가부장의 권위를 세우는 제도가 아니라


빈번하고 쉽고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사회/경제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유책주의의 굴레에서,

더 이상의 원수가 양산되지 않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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