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그래서, 우린 무슨 관계야?"
라고 한 마디만 꺼내면 된다. 그러면 이 모든 어려움을 벗어던질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건 쉬우니까 나중에라도 당장 물어볼 수 있는 거니까 아껴두기로 한다. 그리곤 내가 해볼 수 있는 노력을 하려 한다.
처음에 그가 했던 말이 있었다. 뭐- 왜 꼭 그런 식으로 연애를 해야 하는 거냐는 둥 꼭 정해진 게 있냐는 둥. 그때는 그냥 아는 사람(혹은 알던 사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듣기만으론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며 공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내 일이 되어버렸고, 입장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내가 공감했던 것은 나도 나의 자유를 중요시 생각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구속받는 것을 싫어한다는 거였다. 그가 말한 대로 연애를 할 수 있다면 보다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와 만나고 있는 지금, 많은 게 헷갈린다. 아니, 이걸 만난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 그렇다고 흔히들 하는 말로 썸은 아니잖아? 썸을 이렇게 찐득하게 타나?
일반적인 연인들처럼 모종의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하루 일과에 대해 알고 있는 있는데 썸은 아니고 사귀는 건 더더욱 아니다. 라는 현재의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서 헤맸다. 뭐가 어찌 됐든 나는 그가 좋고, 그도 내가 좋다고 하니 복잡한 내 머리만 설득시키면 될 일 아닌가.
그러다가 만난 문장,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여지없이 통속적인 것일까?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김영민 저, 《동무와 연인》, 2008년, 한겨레출판, 16쪽) 앞에 서성이고 있다. 어쩌면 그와 나도 이런 맥락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