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건강해지기
문화누리카드 사업 담당자로 일할 때였다. 그때 당시 기준 1년에 11만 원으로 문화예술·관광·체육 활동을 지원하는 바우처 사업이었는데, 내가 담당하고 있던 지역(그러니까 서울)이 전국에서 가장 사용률이 낮았다. 전국 꼴찌 타이틀을 벗어나기 위해 23개월 간 애를 썼지만, 무언가 허탈했다. 무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중에서 세 번째나 많다면 (2026년 기준 2,915억) 적어도 문화예술·관광·체육과 관련한 문의 전화를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근데 내가 받은 수 천통의 문의 전화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차라리 먹을 것을 사 먹게 돈을 줘라"라는 것이었다. '문화예술로 행복한 시민'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문화재단에 입사했더니, 매번 듣는 소리가 '무슨 놈의 문화예술을 하냐, 그럴 형편이 안 된다.'라는 전화라니. 물론 일이니까 그런 볼멘 이야기는 가슴 한 편에 묻어둔 채 어떻게 하면 바우처 이용률을 높일 것인가 동료들과 전전긍긍했다. 이벤트며, 찾아가는 장터며, 전국에서 유행한다는 모든 홍보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럴 때마다 드는 3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이거 문화예술 맞아? 낚시도 문화인가? 젓가락 공예품도 문화예술이야? 김치축제에서 김치 사는 것도 문화예술로 봐야 해?"라는 사업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또 하나는 "문화누리카드 사업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노인이다. 기존의 힙한 사업처럼 온라인 이벤트도 못 열어, 문자 보내면 잘못 읽고 노하셔서 전화해, 하물며 어디 나갈 수도 없는 분들도 계신데 어떻게 카드를 써...?"라는 이용자 그룹에 대한 고민. 마지막으로는 "다들 문화예술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모두 다 일회적인 물건 구매에 그치고 말아... 내가 문화예술을 좋아했던 이유는 이게 아닌데"하는 절망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할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되었다. '노인 분들은 무엇을 좋아하지?'라는 생각 끝에 말이다. 한집에 같이 사는 동안 '우리 할머니'는 참 TV 건강 프로그램을 좋아하셨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부터 알토란까지, 건강에 좋다고 하면 다 따라 하셨다. 갑자기 사온 나물 반찬에 이게 웬 나물이냐고 하면, "TV에서 봤다."며 무릎인지 어깨인지 하여튼 어디에 좋다고 하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나물을 사오셨었고, 갑자기 달밤에 체조를 하거나 내게 무언가를 제안하는 일이 있으면 그 출처가 바로 "TV에서 의사 선생님이 그러던데."였다. 아니, 할머니 그거 다 광고야.라고 하면서 번뜩였다. '이거다. 노인 분들은 건강해진다고 하면 다 좋아하시고 따라 하시고 해 보시는구나. 그럼 문화예술 하면 건강해진다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셨을 때, 집 근처 복지센터에서 여러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건강이 비교적 많이 좋아지셨었다. 더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우울해하실 기미가 보일 때쯤 복지관에서 하는 노래교실을 다니며 활기를 되찾으셨다. 이거다. 이거야! 다들 문화예술 하면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고. 그러니까 모두 같이 문화예술 하자고 해야겠다. (추후에 서술해 두겠지만, 이 무책임한 가설과 희망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정말 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를 깨달았다. 바로 '접근성'이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걸 깨부수기 위해 '건강'이라는 조커 카드를 쓰려고 했는데, '물리적인 환경'도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신체 기능의 여건이 되지 않아서, 대안이 될 만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누군가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분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아차. 그럼 어떻게 하지?
음... 모르겠다. 이거 내가 해결할 수 있어? 하고 있을 때
또 우연히도 어떤 개념과 사업, 정책을 발견했다.
바로 영국의 Creative Health 모델과 Social Prescribing(사회적 처방) 사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