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근원으로 떠나는 여정

<글래디에이터 II> (리들리 스콧, 2024)

by 홍석

인스타그램 웹진 '시네마토그래프'에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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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가 24년 만의 속편으로 돌아왔다. 86세 노장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정력적인 이 영화의 귀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검투 경기는 폭력성이 인간의 오래된 본능임을 보여준다. 원형경기장을 둘러싼 군중들은 피에 열광하며 폭력을 유희로 소비했다. 검투 경기는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 중 하나였으며, 몇몇 검투사들은 오늘날의 엔터테이너와 유사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5만 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했던 콜로세움이 갖는 동시성을 고려했을 때, 그곳에서 펼쳐지는 검투 경기는 일종의 대중 매체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검투 경기를 스크린에 재상영하고, 잔혹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자연스럽게 매체 비판적 작품이 된다. 폭력을 더 자극적으로 전시하고 이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콜로세움의 군중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글래디에이터>의 귀환은 폴 버호벤과 미카엘 하네케의 논쟁적인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또한 미디어에 종속된 현대 사회를 비판, 고발해 왔던 영화의 영역을 과거로 확장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은 이미 <블레이드 러너>에서 이 주제를 다룬 적 있다. 타이렐 코퍼레이션의 건물이 고대 피라미드 형태인 것 역시 흥미롭다.)


포스트 시네마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문제점은 극도의 사실성과 무한한 반복 가능성에 있다. 2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선조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폭력에 열광한다. 이제 관객들은 컴퓨터 그래픽과 멀티플렉스의 특별관을 통해 전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체험을 하고, 먼지바람에 날리는 모래 한 톨까지 4K 화질로 확인한다. 널리 보급된 모바일 기기와 OTT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하고, 자극적인 장면들만 모아 둔 요약 영상 역시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디지털 미디어의 폭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시네마의 존재론은 현실과 다르게 작동한다. 리들리 스콧은 인터뷰에서 예산상 엑스트라를 500명밖에 구할 수 없었기에 콜로세움을 가득 채워야 하는 나머지 인원들은 CG로 처리했다고 언급했다. 군중의 대부분이 CG라는 사실은 누구나 영화를 보면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런 ’가짜 군중‘은 역설적으로 ‘진짜’ 엑스트라들을 더욱 디테일하게 만든다. 적은 인원으로 전체를 표현하려는 시도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현실의 존재론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다.


미디어 고고학자 유시 파리카는 탈물질화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기술 미디어 역시 물질적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곳곳에서 리튬, 백금, 콜탄과 같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에 속해 있던 원초적 물질들은 디지털 기기로 변환된다. 파리카는 이러한 과정을 미디어 문화 이면의 착취와 폭력으로 바라보며 이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에서 등장하는 폭력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면의 폭력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오래전으로, 원초적 물질들의 시기로 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의 개성이 실재하지 않는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 구체화되는 시기에, 미디어의 물질성은 다시금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의 존재론을 상기시킨다. 영화학자 에리카 발솜은 비인간의 존재 인식이 중요해질수록 물리적 현실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렌즈 기반 이미지의 가치가 더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의 <글래디에이터 2>는 여러 겹으로 덧씌워진 컴퓨터 그래픽 속에서 육체와 폭력이라는 인간 근원의 물질성을 좇는 영화다. 이 원초적 본능을 찾는 말년의 여정에서, 리들리 스콧은 중세(<라스트 듀얼>)와 근대(<나폴레옹>)를 넘어 드디어 로마의 입구에 도달했다. 이곳이 시간 여행의 종착지일까? 그의 다음 작품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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