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우> (긴츠 질발로디스, 2024)
인스타그램 웹진 '시네마토그래프'에 투고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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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웅덩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이윽고 집채만 한 파도가 평화로워 보였던 숲속을 덮친다. 세상은 온통 물에 잠긴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재앙을 극복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만남과 이별이 교차한다.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플로우>는 동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재난을 그린다. 시선으로 시작한 영화는 시선으로 끝난다.
물에 잠긴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명백한 인간의 흔적이다. 거대한 구조물과 폐허, 조각상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습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의 부재는 영화에 깃든 기후 위기의 함의와 겹쳐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 재앙의 이미지는 자연스레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지를 따라 항해하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며 인류세의 흔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기후 위기를 다뤘던 여타 영화들과 다르게 비인간 주체를 내세운 <플로우>는 게임 시네마틱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역동적 화면 움직임으로 그들의 시선을 좇는다.
고양이,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 여러 동물이 대홍수를 극복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나는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 노아는 번식을 위해 동물들을 ‘한 쌍’씩 짝지어 방주에 태웠지만 <플로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홑몸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동종 무리는 흩어지거나 갈등을 빚는다. 여우원숭이 무리가 잠시 배에 올랐을 때는 거울이 깨지는 등 소동이 일어나고, 뱀잡이수리는 고양이를 도우려다 무리에서 쫓겨난 신세다. 골든 리트리버는 동료들과 떨어졌다 다시 만났지만, 그들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라진다. <플로우>는 ‘짝’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다. 만일 성우를 캐스팅했다면 우리는 동물의 시선에 몰입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성우의 성별에 따라 동물의 성을 짐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성우 대신 동물의 소리를 녹음해 사용하면서, 영화는 성별이 주는 이미지를 지운다. 21세기의 재앙 앞에서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영화학자 에리카 발솜은 영화에 등장하는 바다를 다룬 저서 <대양의 느낌>에서 ‘예측 불가능한’ 바다의 우발성에 대해 언급한다. <모아나>와 같은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의 파도는 연출 의도에 따른 정확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기에 예측과 제어가 가능하고, 실체가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연의 복잡성을 ‘해결’하겠다는 인간의 시도를 오만한 행위로 간주한다. <플로우>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발솜이 지적한 태도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동물들이 타고 있는 배는 스스로 동력을 낼 수 없어 바다의 ‘플로우’에 몸을 맡겨야 한다. 갑작스럽게 동물이 물에 빠지는 장면도 여럿 등장하고, 이때 프레임 역시 당황한 듯이 흔들린다. 흔들림 역시 비인간의 시선과 눈높이를 따른다. ‘비인간적’ 바다를 인간 뜻대로 재단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순간이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일시적이며 환상에 가까운 <플로우>의 바다는 광활함을 잃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고양이가 잠시 꿈을 꾸는 듯한 부분이다. 앞서 재난의 전조임을 확인했던 사슴 무리가 고양이를 둘러싸고 뛰어다니는 내용의 꿈은 고민해 보지 못했던 ‘동물의 트라우마’를 시각화한다. 기후 위기의 위협은 동물을 비롯한 비인간 인격체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해변에 떠내려온 고래의 사체를 연상시키는 후반부의 장면, 뛰어다니는 사슴 무리의 모습 등 반복적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는 징후적 이미지들은 비인간 역시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경고에 연대의 몸짓으로 답한다. 엔딩 직전, 모든 위험이 해결된 것처럼 보일 때 또다시 사슴 무리가 숲을 질주한다. 고양이는 오프닝처럼 웅덩이를 쳐다보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깨진 거울을 통과해 세상으로 나왔던 고양이는 마침내 공동의 형상으로 다시금 거울-바다 위에 떠오른다. 이제 바다는 비인간 연대가 가능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