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어린이집 : 키 크면 다냐?

키 크면 다냐? 응 키 크면 다야

by 결이

어릴 때 할머니댁에서 사촌언니랑 같이 자랐다. 5살 때부터 근처 어린이집을 다녔다. 아침마다 가방 메고 사촌언니 손 잡고 어린이집에 가던 기억이 난다.


나는 기린반이었고 사촌언니는 나보다 하나 위인 코끼리반이었다. 등하원 할 때는 같이 다녔지만 어린이집에 가면 반이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집에 와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이 공유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사촌언니한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공유하게 된다.


반에서 키가 가장 큰 남자애가 나만 보면 그렇게 괴롭혔다. 나는 또래보다 작았고 그 남자애는 나보다 머리 하나 더 컸다. 처음엔 무시하다가 자꾸 괴롭히니까 "코끼리반에 있는 언니한테 이를 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애는 이르라고 했다. 그날 하원 이후에 소파를 뛰어다니면서 책을 읽고 있는 사촌언니에게 그 남자애 이야기를 했다. "자꾸 나 놀리는데 언니가 혼내줘!"라고 했지만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다. 언니는 책을 읽느라 내 말을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고, 들었어도 우리 반에 찾아와서 남자애를 혼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언니에게 우리 반에 날 찾으러 한 번 와달라고 했다.


다음날, 언니는 점심시간이 끝난 후 우리 반에 찾아왔다. 내가 부탁해서 찾아온 건 아니었고, 집에 일이 있어서 잠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단다. 그날 하원하는데 날 괴롭히던 남자애가 내 눈치를 봤다. 그 후로 남자애는 날 괴롭히지 않았다. 사촌언니는 또래 중에서도 키가 컸고 그 남자애보다도 당연히 컸다. 역시 어릴 때는 키 큰 게 최고다.


최근에 사촌언니에게 그 일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전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기억이 없는 게 당연하고 나는 언니 키를 이용(?)해서 기억이 남은 거겠지. 성인이 된 지금도 난 겨우 평균 키이고, 언니는 나보다 머리 하나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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